사형수가 자살했다. 다섯 명의 부녀자와 아이들을 무참히 살해한 사형수 정남규의 이야기다. 그가 수감됐던 방에서 발견된 노트에는 ‘현재 사형을 폐지할 생각은 없다고 한다. 요즘 사형제도 문제가 다시 떠오르고 있다. … 덧없이 왔다가 떠나는 인생은 구름 같은 것’이라는 메모가 남겨져있었다. 무고한 다른 사람을 아무렇지 않게 무참히 죽인 사형수가 정작 자신이 죽는 것이 두려워 자살했다는 것이 아이러니를 넘어 이기적이게 느껴진다.


그러나 정남규의 이런 행동에 대해 맞다, 혹은 아니다를 논하기 전에 우리는 자신을 돌아볼 필요가 있다. 이렇게 ‘어처구니가 없는’ 상황은 비단 정남규 사건에서만 일어나는 것만이 아니기 때문이다.


기자 자신도 이런 이기심에서 나오는 실수를 곧잘 범하고는 한다. 강의실이나 도서관에서 잡담을 하거나 음식물을 먹은 경험이 있으면서도 다른 사람의 행동에 눈살부터 찌푸렸던 적이 많기 때문이다. 그들에게 그런 시선을 보내기 전에 먼저 돌아봐야할 것은 기자 자신임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우리는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준 것은 쉽게 넘어가고 자신이 받은 피해에는 지나치게 흥분하는 경향이 있다. 사람을 죽이고도 자신이 죽는 것을 두려워하는 그의 이기심과 남을 배려하기 전에 내가 받은 피해만 생각하는 우리의 이기심은 뭐가 다를까.


독일의 철학자 에리히 프롬은 그의 저서 ‘사랑의 기술’에서 인간의 이기심에 대한 정의를 내렸다. 그의 말에 따르면 이기심은 오히려 자기애와 정반대되는 개념이다. 그는 이기적인 사람은 지나치게 자신을 돌보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상 진정한 자아를 돌보는데 실패한 것을 은폐하면서 보상을 얻으려고 노력하고 있을 뿐이며 이러한 노력은 결국 실패로 돌아간다고 했다.


여기서 기자는 정남규의 이야기가 떠올랐다. 사실 정남규는 법정에서 ‘사람을 더 죽이지 못하고 잡혀서 아쉽다’라는 발언을 해 세간의 주목을 받은 바 있는 의심할 여지없는 살인마다. 그러나 단순히 그가 인정 없는 살인마이기 때문에, 아니면 사이코 패스이기 때문에 살인을 저질렀다고만은 할 수 없다. 단 한 번이라도 그가 자신의 행동에 죽어갈 사람들을 입장을 바꿔서 생각했다면, 바로 그 이기심을 조금만이라도 덜어냈다면, 이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라 생각하니 기자는 마음이 무거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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