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믈리에 김송동(불어불문 79졸) 동문 인터뷰

 

와인은 어렵다. 종류도 많고 이름도 복잡하다. 그런데 여기 우리에게 어렵게만 느껴지는 와인과 ‘맞선’을 주선하는 사람이 있다. 와인과 사랑에 빠진 소믈리에 김성동(불어불문 78졸) 동문을 강남와인스쿨에서 만났다.

학창시절의 추억에 대해 묻자 김 동문은 “대학시절이요? 나 공부 안했어요. 그래도 다른 나라 문화에 대한 관심이 특히 많았던 것 같아요. 그래서 불어를 공부하고 싶어서 불문과에 들어가게 됐죠”라고 말했다.


이랬던 그가 와인의 매력에 빠지게 되면서 ‘공부벌레’가 됐다. 졸업 후 대한항공에 입사해 승무원으로 재직하면서 와인을 처음 접한 후, 미국에서 시작된 10년간의 결혼 생활이 세계적 커뮤니케이션 코드로서의 와인과 음식문화의 중요성을 인식하게 하는 계기가 된 것이다. 그는 한 시간짜리 강의 자료를 준비하는데 최소 200시간 이상을 투자한다. 강의마다 한 번도 똑같은 자료를 가지고 간적이 없다. 매일 새벽 두 세시까지 와인에 대한 자료를 조사한다. 더 나은 강의를 제공하기 위함이다. “처음에 자료 만들 때 200시간 걸렸던 것도 지금은 아마 몇 백 시간은 족히 더 들어갔을 거에요”라며 “그게 제 강의를 여러 번 듣는 분들이 지루해 하지 않고 오히려 더 재밌어하는 이유라고 생각합니다”라고 말했다. 이렇게 노력하는 이유에 대해 “지금은 아무도 나보고 공부하라는 사람 없거든요. 나도 안 해도 돼요. 강의 자료 똑같은 거 가져다가 써도 아무도 뭐라고 할 사람은 없어요. 하지만 늦공부가 터졌다고, 와인의 매력에 빠지니 눈이 아파도 컴퓨터 앞에 앉게 되더라고요”라고 말한다.


와인의 어떤 매력이 김 동문을 이렇게 변화시킨 것일까. “나는 이제 이만하면 와인에 대해 많이 아는구나 하는데, 사실은 항상 내가 아는 게 미미한 정도라는 거에요. 우리가 컴퓨터에 대해 많이 아는 것 같아도 사실 컴퓨터 기능 중에 우리가 쓰는 기능은 5%도 안 되잖아요. 와인도 똑같아요”라며 “그게 매력이에요 와인은. 끝이 없는 게. 항상 공부할 게 있는 거 있죠”라고 말한다. “나처럼 공부 싫어하는 사람도 와인을 공부하게 됐으니까 누구나 할 수 있어요”


이렇게 매력적인 와인이지만 아직까지 와인을 배우는 것을 일종의 사치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와인을 배워야하는 이유에 대해 김 동문은 이렇게 말한다. “우리의 소주도 있고, 막걸리도 있으니까 저건 마시면 안 된다고 밀어낼게 아니라, 우리의 소주와 막걸리도 좋지만, 대부분의 나라 사람들이 통용하는 커뮤니케이션 코드를 읽을 줄 알아야 문화도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는 와인을 배워야 하는 이유를 우리가 영어를 배우는 이유에 비유한다. “영어는 가장 많이 통용하는 언어잖아요. 우리는 그 많은 사람들과 의사소통하기위해 영을 배우려 안간힘을 쓰는 것이고. 와인은 문화 언어에요. 이를 통해 와인을 마시는 각 나라의 문화를 교류하는 거죠.” 그래서 김 동문은 와인강의의 마지막에는 항상 ‘세계문화의 이해’를 주제로 강의를 한다. “편견이 없이, 국적이나 인종, 성별에 의해서 차별하지 않고 사람들을 대할 수 있는 마음가짐을 갖는 법을 강의해요. 문화에 대한 이해를 돕죠.”


김 동문은 타문화를 이해해야하는 필요성을 절실히 느낀 계기가 있었다. 한번은 외국인들을 집에 초대해 식사를 대접할 기회가 있었다. 김 동문은 음식을 맛있게 대접하고 싶어서 하루 종일 준비해 식사 시간 내내 대접을 했다. “그런데 외국사람 중 한 사람이 뭐라고 말했냐 하면, 너는 인종차별주의자니? 너는 왜 우리랑 같이 밥을 안 먹고 계속 부엌에만 있니? 그러는 거에요.” 김 동문은 음식을 맛있게 만들어 베풀고 싶었고, 한국음식이 얼마나 좋은가를 알려주고 싶은 마음이었다. 그러나 그 외국인은 김 동문과 김 동문의 남편에 대해 알고 싶었고, 서로 원하는 게 달라생긴 오해였다. “나는 일만 하고 제대로 대접을 안 한 것처럼 돼버린 것을 알고 놀랐어요. 그래서 다른 나라 사람하고 문화차이를 항상 생각해야겠구나 했죠.” 그때부터 승무원 때의 경험과 오랜 외국생활의 기억을 되살려 커뮤니케이션이라든지, 서로 행동을 이해 못해서 오는 오해를 하나하나 적어보게 됐다. 그게 지금은 강의 자료로도 쓰인다.


“와인 한 잔은 신발과 같아요.” 무슨 말일까. “신발처럼 우리를 칠레로 포르투칼로, 프랑스로 안내하거든요.” 김 동문은 와인을 배우면 그 나라의 역사와 음식문화를 알게 되고, 양조학을 배우며 과학, 화학, 건축학 등 모든 학문을 배울 수 있다고 말한다. 그렇기 때문에 김 동문은 와인을 강의하면서 단순한 와인 맛을 익히고 배우는 것만을 가르치지 않는다. 와인을 통해 그 나라의 음식문화, 사람들이 사는 생활모습, 그리고 그 사람들과 소통할 수 있는 방법을 배우는 기회가 될 수 있게 한다. 그래서 김 동문의 대표적 강의인 ‘영화 속 와인이야기’도 이 같은 생각에서 나왔다. 이는 같은 제목의 칼럼으로 일간지에 연재되는 중이다. “대학교 때 연극반 활동도 했고, 연출ㆍ영화에 관심이 많고 좋아해요. 그래서 영화 속에서 와인이 가지는 의미에 대해 생각해보게 됐어요.”

영화뿐만 아니라 실제 생활에서도 와인은 특별한 장소에서 특별한 의미로 사용되기도 한다. 오바마 대통령 당선 축하주로 쓰인 와인은 남아공에서 생산된 1994년산 스파클링 와인이었다. 1994년은 남아프리카공화국에게 특별한 해이다. 만델라가 오랜 저항 끝에 대통령에 당선돼 흑백분리정책을 폐지한 해이기 때문이다. “우연히 그랬는지 일부러 그랬는지는 모르지만 오바마 대통령이 만델라가 인종차별을 법적으로 금지한 정신을 승계하겠다는 의미도 들어있다고 말할 수 있겠죠. 그래서 와인이 국제무대에 오를 때에는 그냥 올라가지 않아요. 대부분의 경우는 그 자리에 어울리는 특별한 의미의 와인을 고르죠.”


이런 와인의 매력에도 여전히 와인은 어렵다는 생각을 떨치기는 힘들다. 와인을 처음 접하는 우리들에게 와인과 친해질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와인은 물을 단 한 방울도 섞지 않고 만들기 때문에 와인의 맛에 가장 큰 여향을 끼치는 것은 아무래도 포도일 수밖에 없겠죠.” 와인을 만드는데 쓰이는 포도는 가장 많이 쓰이는 것만 꼽아도 200종이 된다. 그러나 다양하다고 해서 복잡하고 어려운 것만은 아니다. “일단 우리가 기본적으로 알아야 하는 것은 10종정도에요. 외울 필요는 없어요. 와인을 마실 때 그냥 마시지 말고 품종이 무엇인지 한번쯤 기억해보면 더 좋을 것 같아요.” 그 다음으로 와인의 맛에 영향을 끼치는 것은 기후와 토양이다. 그래서 와인 산지가 중요하다. “와인을 알고 나니까 그 나라의 기후에 관심이 가게 되더라고요. 자연히 지도에 익숙해지고요. 또 와인 맛에 영향을 주는 지형적 조건을 알고 싶어서 산, 강의 위치를 찾아보게 됐어요.” 지도를 봐도 아직도 와인과 와인 산지를 연결 짓기 어렵다면 더 재밌게 배울 수 있는 방법이 있다. “이 동네 출신은 누가 있지? 이 동네 와인은 어떤 배우가 좋아했지? 하면서 무작정 외우려 하지 말고 그 지역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 상상하며 기억하는 게 좋을 것 같아요.”


김 동문은 매주 수요일 와인강의를 한다. 올해로 벌써 10년째이다. 오랜 시간 강의를 이어오면서 가장 보람을 느끼는 순간을 물었다. “내 나름대로 와인이라는 것을 그릇에 담아 내놓았더니 와인이 맵시도 좋고 다른 사람이 보기에도 좋았을 때 가장 좋아요.” 특히 강의 피드백이 좋아 많은 사람들이 호응해 줄 때 가장 큰 활력을 느낀다고 했다. “내 말이 한 단어도 흐트러지지 않고 그 사람들한테 스며드는 게 느껴질 때, 그럴 때는 너무 좋아서 밤에 잠이 안와요.”


마지막으로 후배들에게 조언을 부탁했다. 그러자 김 동문은 포도나무 이야기를 시작했다. “포도나무는 사람이랑 똑같아요. 80살까지 사는데, 어떤 나무는 100살이 넘어서까지 살아요. 사람도 나이가 들면 생각이 깊어지듯이 포도나무도 나이가 들수록 그 맛이 깊어져요.” 사람이 세 살쯤 되면 걷기 시작하는 것처럼 포도나무가 3년쯤 되면 포도를 수확할 수 있다. 그러나 포도 수확량이 가장 많은 시기는 20살이다. 사람도 체력적으로 가장 건강할 때가 20살이다. 하지만 이 시기의 포도는 맛의 깊이가 없다. 이런 포도는 깊은 맛이 있는 포도와 섞어서 와인을 만든다.


40살 쯤 된 포도는 사람의 인생이 깊어지듯 깊은 맛이 난다. 또 포도가 물, 양문, 거름이 많은 땅에서 자라면 오히려 좋은 포도를 생산해 내지 못한다. 양분이 많으면 땅속 깊이 뿌리를 박지 않기 때문이다. 모래가 많고, 석회석량이 많고 양분이 없어 비가와도 물이 금방 빠져버리는 그런 땅에서 포도는 잘 자란다. 물을 찾아 깊게는 80미터까지 뿌리를 박고, 그러면서 땅속의 미네랄을 충분히 섭취하기 때문이란다. 그러면서 깊어진 포도의 맛은 와인의 맛도 복잡하고 오묘하게 만든다.


“사람이랑 비슷해요. 환경을 탓하지 말고 노력하세요. 반전의 기회는 언제나 있어요. 인생은 마라톤이라고 생각해요. 20년, 30년을 가야하니까 반전의 기회는 정말 많다는 거죠.”

저작권자 © 숙대신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