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우리에게 ‘국민오누이’가 생겼다. 세계피겨선수권대회에서 우리나라 최초로 동메달을 수상한 김연아 선수와 세계수영선수권대회에서 금메달과 동메달을 동시에 수상한 박태환 선수가 국민들의 지대한 관심 속에 ‘국민오누이’로 명명된 것이다. 이들에 대한 관심은 자연스럽게 피겨스케이팅과 수영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져 제2의 김연아와 박태환을 위해 두 스포츠 종목에 대한 지원을 늘려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비인기 종목이었던 피겨스케이팅과 수영에 대한 국민들의 관심이 높아진 것은 운동 선수들과 그들의 팬들 모두가 반길 만한 일이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씁쓸한 기분이 든다. 몇 년 전만 해도 선수들이 훈련비를 부담하는 등 재정적ㆍ제도적 지원이 미비했던 피겨스케이팅과 수영이 당장의 성과로 180도 다른 대접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국민오누이’ 김연아와 박태환도 이런 열악한 과정을 거쳐 지금의 성과에 이르렀지만, 우리는 그들의 힘겨웠던 과정에 박수치기 보다는 세계를 놀라게 한 기록갱신에만 열광하고 있다.


이는 비단 스포츠 종목에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사회곳곳에서 볼 수 있는 현상이다. 현재 우리 사회는 가시적인 성과가 없으면 관심 갖지 않는 ‘성과주의’가 만연해 이에 따른 피해자들이 많다. 일례로 희귀병 치료 연구에 매진했던 한 연구원이 ‘연구의 진전이 보이지 않는다’는 이유로 연구 기회를 빼앗기는가 하면, 연말 승진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실적을 조작하는 동료 때문에 피해를 받는 성실한 근로자도 있다. 이외에도 좋은 학점을 위해 컨닝을 하는 몇몇 학우들 때문에 피해 받는 학우들의 모습은 우리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예이다.


우리는 ‘과정 없이는 결과도 없다’는 당연한 진리를 자주 잊는 듯하다. 눈앞에 보이는 큰 성과에 열광하기 전, 그 결과가 있기까지 기나긴 노력의 시간이 있었다는 것을 생각해 보자. 쉽게 올라간 산보다 힘들게 올라간 산의 정상이 더 아름답고 상쾌하듯, 같은 성과일지라도 더 큰 성취감과 기쁨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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