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중을 지난 무렵인지 죽은 듯이 고요한 속에서 짐승 같은 달의 숨소리가 손에 잡힐 듯이 들리며 콩포기와 옥수수 잎새가 한층 달에 푸르게 젖었다. 산허리는 온통 메밀밭이어서 피기 시작한 꽃이 소금을 뿌린 듯이 흐뭇한 달빛에 숨이 막힐 지경이다.”
가산(可山) 이효석(1907~1942)의 대표작 『메밀꽃 필 무렵』의 한 구절이다. 효석은 이 소설에서 봉평의 자연정경을 감각적으로 묘사해 한국어의 아름다움을 가장 잘 살린 작가로 평가받고 있다.

당신이 몰랐던 효석의 인생
효석의 표현력은 유년시절의 체험에서 나왔다고 보여진다. 1914년, 8살 효석은 고향 봉평에서 100리 떨어진 평창공립보통학교까지 걸어다녔다. 그는 통학을 하는 동안 자연을 관찰할 수 있었고 멋진 풍경을 감상하며 감수성과 상상력을 키웠다. 그가 지나다녔던 노루목고개, 장평의 개울 등은 실제 『메밀꽃 필 무렵』의 배경으로도 등장한다. 14세 때 효석은 경성제일고등보통학교를 무시험으로 입학한 후 우등생으로 졸업할 정도로 학업능력이 우수했다. 이어 경성제국대학에 입학해 영문학을 전공했으며, 『도시와 유령』『기우』『행진곡』등의 작품으로 주목받기 시작했다.

이처럼 효석은 재능과 실력을 갖춘 수재였지만 심약하고 감수성이 예민해 작은 일에도 상처를 잘 받았다. 효석이 대학 졸업 후 25세 때의 일이다. 이 때 그는 한창 작품활동에만 매진하고 있었기에 다른 수입이 없었다. 생활고에 시달리던 효석은 결국 일본인 은사에게 일자리를 소개받아 조선총독부 도서과에 취직한다. 그러나 이내 사람들의 비난에 못이겨 그만두게 된다. 이갑기라는 청년이 길에서 만난 효석에게 취직한 일로 욕설을 퍼붓자 그 자리에서 실신해 버렸다는 일화도 있다.

효석은 토속작가라는 이미지와는 달리 서구지향적인 심미주의에 심취해있었다. 서양 문화에 일찍 눈을 뜬 아버지와 전공이었던 영어영문학, 외국인 교수와의 만남 등의 영향을 받은 탓이다. 그는 모차르트와 슈베르트의 음악을 좋아했고 우유와 커피를 즐겨마셨다. 또한 프랑스 영화감상을 즐기며 유럽여행을 꿈꾸기도 했다.

총독부를 그만둔 이듬해인 26세부터 숨을 거두던 35세까지 효석은 경성농업학교, 숭실전문학교 등에 재직하며 교육자의 길을 걸었다. 더불어 활발한 작품활동으로 35세 짧은 생애동안 70여 편의 단편소설과 2편의 장편소설, 20여 편의 에세이를 남겼다.


다양하고 독창적인 효석의 문학세계
『메밀꽃 필 무렵』은 고등학교 문학교과서 18종 중 13종에 수록돼 있을 만큼 대중적인 작품이다. 때문에 대부분의 사람들은『메밀꽃 필 무렵』을 통해 효석을 기억한다. 그러나 이는 그의 문학세계에서 아주 작은 부분을 차지할 뿐이다. 효석의 문학은 획일화됨 없이 매우 다양하다.


경성제국대학시절 효석은 공산주의 혁명에 동조하는 프롤레타리아 문학에 관심을 보이며 진보성향을 나타냈다. 비록 프롤레타리아 문학에 직접 뛰어들지는 않았지만 혁명운동에 동조적 입장을 취했던 동반자 작가로 분류된다. 이 시기에 발표된 작품으로는 현실에 대한 독자의 각성을 촉구하는 『도시와 유령』이 대표적이다.


효석은 이외에도 1933년 김기림, 정지용, 이태준 등과 함께 모더니즘 계열의 작가모임인 구인회를 창립해 활동하기도 했다. 이에 대해 우리 학교 국어국문학 전공 권성우 교수는 “효석은 『메밀꽃 필 무렵』같은 토속소설 외에도 다양한 의식을 갖춘 작품을 썼다. 한때는 현실 세계에 관심을 갖고 사회의식을 표출하기도 했고 서구적 감성과 낭만주의에 기초를 둔 작품을 쓰기도 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효석을 ‘미학적 자의식을 가진 세련된 작가’라고 평가했다.


탐미주의나 서구지향적인 효석의 글이 ‘의식적인 현실도피의 산물’이라는 비판도 있다. 그러나 효석의 문학은 이데올로기 문학이 대다수를 차지했던 때에 순수문학이 지닌 예술적 독창성을 과시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매년 9월이면 봉평은 메밀꽃을 보러 온 관광객들로 붐빈다. 올해는 효석이 탄생한 지 100주년이 되는 해인지라 메밀꽃이 피기 전부터 관광객들이 줄기차게 찾고 있다. 이에 봉평은 그를 추모하는 다양한 행사를 펼칠 예정이다. 9월에 열릴 효석문화제에는 전국의 유명 문인 300여 명이 참여하는 ‘문학인대회’ ‘문학의 밤’ ‘문학콘서트’ 등이 이어지며 7월~10월에는 주말마다 이효석문학관 내 정원에서 『메밀꽃 필 무렵』을 각색한 연극을 무료로 볼 수 있다.

부산스러운 봉평의 움직임에 새삼 효석의 유명세가 느껴진다. 효석은 봉평의 자랑이자 하나의 큰 유산이다. 그는 국어를 재료로 예술을 창조하고, 한글의 아름다움을 느끼게 한다는 점에서 우리 모두의 유산이기도 하다. 이효석 탄생 100주년을 맞아 그의 발자취를 따라가 보자. 그의 책 속에서도 좋고 그의 고향 봉평에서도 좋다. 효석의 예술 혼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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