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회 > 기획
역사 속의 학생회, 다시 역사를 품어라
류이제 기자  |  smpryj76@sm.ac.kr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승인 2009.11.23  
트위터 페이스북 미투데이 네이버 구글 msn

한 학기가 저물어가는 요즘, 새로운 총학생회를 뽑는 선거철이 돌아왔다. 각 대학마다 후보들의 선거 유세가 떠들썩하다. 학생회는 학생들이 스스로 뽑은 대표로, 재학생들의 의견을 수렴하고 전달하는 역할을 한다. 학교라는 작은 사회 안에서 학생회 선거는 학생들에게 대의민주주의를 공부하고 실현할 수 있게 하는 장을 제공한다. 학생회의 역사, 생성에서부터 지금까지의 변천 과정을 살펴보며 그 의미를 되짚어보자.

조선 시대에도 학생회가?

고등 교육을 담당했던 성균관에는 ‘재회’라는 유생들의 자치기구가 있었다. ‘장의’라는 총학생회장이 두 명 있었고 ‘색장’이라고 불리는 총무부장과 문화부장의 역할을 하는 임원들이 그들을 보좌했다. 이들은 성균관 유생들 사이에서 자치기구의 역할을 담당했다고 한다. 그들은 유희(또는 궐희)라고 불리는 모의조정 행사를 통해 훗날 조정에서 관료로 일할 날을 대비하기도 했다.

그러나 당시의 유교적 사회 분위기에도 불구하고, ‘재회’는 현재의 학생회와 놀랄 만큼 유사한 면이 있었다. 이들은 자신들의 의견을 게재하기 위한 대자보를 붙이기도 해 유생들의 단체 행동을 주도하기도 했다. 예를 들면 자신들이 수렴해 내놓은 의견이 사회에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식당 출입을 하지 않고 ‘수업 거부’를 하기도 했는데, 이는 ‘권당’이라는 명칭으로 불렸다. 또 수업 중에 장님과 귀머거리처럼 행동하는 것은 ‘청맹권당’이라고 한다. 또 ‘공관’은 성균관을 나옴으로써 학업을 중단하는 일종의 동맹휴학으로 당시 학생들의 의사 표현이 적극적으로 실현됐음을 알 수 있다.

학생회는 일제 강점기에 학생들을 응집시키는 역할을 하며 사회적으로 영향력을 갖는 집단으로 부각된다. 1910년대 3.1운동에 학생들이 대거 참여했다. 이후 ‘조선학생회’ ‘공학회’ ‘신간회학생부’ 등 다양한 학생조직이 생겨났고 학생들은 독립 운동의 한 주축으로 자리매김한다. 1920년대 순종의 장례식이 있었던 6월 10일에 만세를 외치는 6.10 학생운동이 일어났고 이는 11월 광주학생항일운동으로 이어진다. 일본 남학생들이 조선의 여학생들을 희롱한 사건이 발단이 된 이 운동은 광주를 넘어 전 지역으로 퍼져나가 항일 운동의 하나로 기록되고 있다. 또 3.1운동 이후의 최대 독립운동으로 학생들이 독립운동의 주역으로 등장, 부상시킨 사건인 것이다. 당시 학생들은 ‘식민지적 노예 교육 제도를 철폐하라’ ‘전국 학생 대표자 회의를 개최하라’등의 격문을 외치며 운동을 전개했다.

격렬했던 80년대의 학생회

대학 학생회의 역사는 근현대사의 학생운동과 떼어서 생각할 수 없다. 일제강점기가 지난 후 학생들은 민주주의라는 새로운 이념을 위해 거리로 나왔다. 이전의 시대에서 학생들의 역할이 주도 세력에 힘을 보태는 것이었다면 이 시대의 학생들은 거리의 주역으로 사회 변혁을 주도했다. 전국학생총연맹 등 여러 학생 단체들이 쏟아져 나왔고 각 대학의 학생회들은 견고한 연계로 독재에 대항했다. 혹독한 탄압에도 불구하고 대항을 멈추지 않았던 대학생들은 이 시기 대한민국의 발전에 한 획을 그은 것이다. 이 시기 일어났던 6.10 민주화운동, 5.18 광주민주화운동의 중심에 학생회가 있었다. 학생회를 필두로 대학생들은 거리의 주역으로 대한민국을 일구어 낸 젊은 피, 깨어있는 지성의 역할을 했다.

80년대 이후 ‘운동’의 열기가 사그라지면서 학생회는 학교로 돌아갔다. 거리로 나갔던 학생들은 교실에서 공부에 몰두했고 개인적인 문제에 골몰하기 시작했다. 학생회는 학교로 돌아가 교내의 자치기구로 주 활동을 시작했다. 여전히 사회 현안에 의견을 내기도 했지만, 이제 그 목소리가 전체 학생을 대변한다고 보기는 힘들어졌다.

운동권 vs 비운동권 경향 뚜렷

학생회는 획일적인 모습이 사라지면서 저마다 그 특성을 가지게 됐다. 크게 앞선 80년대의 모습을 이어받은 ‘운동권’과 교내자치기구로서 학생들의 편의를 위하는 일에 힘쓰는 ‘비운동권’으로 구분할 수 있다. 학생회 선거를 할 때 후보를 판별하는 첫 번째 기준이 운동권이냐, 아니냐 하는 것이 됐고, 학생들은 각자의 성향에 따라 후보를 선택하고 지지할 수 있게 됐다. 운동권은 대학생의 사회참여를 유도한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라는 입장이 있는 반면, 학생이 특정 정치 성향을 대변하기 쉽다는 점에서 비판도 많다. 또 비운동권은 안정적으로 학생들의 복지를 위해 일하지만, 학생을 대표하는 사회적 목소리를 내지 못한다는 점에서 역시 비판을 받기도 한다.

학생회는 총학생회, 총여학생회, 총동아리연합회, 총대의원회 등 그 형태는 다양하게 세분화됐지만 학생들의 구심점 역할을 담당하던 예전의 위치는 되찾지 못한 듯 보인다. 최근 학생회의 문제는 학생들이 없는 학생들의 대표라는 것이다. 그 예로 학생회 선거의 낮은 참여율을 볼 수 있다. 후보도 단일 후보인 경우가 드물지 않고, 학생들의 투표율 또한 낮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선거관리위원회나 학교 측에서는 학생들의 참여율을 높이기 위한 홍보로 다양한 방법을 시도한다. 투표를 했을 때 기념품을 증정하기도 하고, 또 인터넷이나 휴대폰을 이용한 전자 투표제도를 도입하는 모습도 보인다. 그러나 학생들 스스로 자신이 속한 집단에 주인 의식을 가지고 적극적인 참여를 해야 한다. 오랜 시간동안 학생과 함께 성장해 온 학생회에서 다시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볼 때다.

류이제 기자 smpryj76@sm.ac.kr

류이제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트위터 페이스북 미투데이 네이버 구글 msn 뒤로가기 위로가기
이 기사에 대한 댓글 이야기 (0)
자동등록방지용 코드를 입력하세요!   
확인
- 200자까지 쓰실 수 있습니다. (현재 0 byte / 최대 400byte)
- 욕설등 인신공격성 글은 삭제 합니다. [운영원칙]
이 기사에 대한 댓글 이야기 (0)
최근인기기사
1
온전히 여성으로서 문화를 향유하기 위해
2
공유경제, 새로운 경제혁신 불러올까
3
숙명을 이끄는 자, 응답하라
4
‘너나 해’, 여성들의 목소리를 대변할 노래
5
여성, 세상을 향해 달리다
신문사소개기사제보광고문의불편신고개인정보취급방침이메일무단수집거부
발행인 : 강정애 | 편집인 겸 주간 : 육성희 | 편집장 : 한예진 | 발행처 : 숙명여자대학교| 청소년보호책임자 : 강정애
우)140-742 서울특별시 용산구 청파로 47길 100 숙명여자대학교 숙대신보사
행정실 ☎ 710-9150 (Fax) 706-2695 / 편집실 ☎ 710-9721 / 9152
Copyright © 2019 숙대신보. All rights reserved. mail to smnews@sookmyung.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