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엔 보고 싶은 영화가 많아서 행복하다. 요즘같이 괜찮은 영화가 많이 나올 때면 없는 시간을 쪼개서라도 영화 하나는 봐줘야한다. 오랜만에 영화관 냄새를 맡으니 가슴이 설렌다. 어디선가 평이 좋았던 것을 봤었기도 했고 나이가 들수록 연기의 폭을 넓혀가는 브래드 피트도 보고 싶어 ‘바스터즈: 거친녀석들’을 고른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브래드 피트의 연기, 훌륭했다. 영화를 보면서 간간히 웃기도 했고 지루할 부분은 거의 없었다. 하지만 난 그다지 유쾌하지 못했다. 이 영화의 중심 소재는 유대인을 학살했던 독일인 나치를 잡는 바스터즈이다. 때문에 영화는 꽤 잔인하다. 감독은 관객에게 머리 가죽을 벗기고, 총알을 얼굴에 갈기고, 몽둥이로 구타하는 장면들을 아무런 여과없이 그대로 보여준다. 특히, 영화의 마지막인 영화 속 극장 안에 모든 고위직의 나치들을 가둬놓고 불태워 죽이는 장면은 아직까지 잊혀지지 않는다. 고위직 나치들을 죽이기 위해 붙인 불에 의한 뿌연 연기가 극장 안을 가득 메운다. 동시에 가족을 몰살당한 아픔을 겪은 한 유대인 여자의 얼굴과 함께 깔리는 웃음소리. 섬뜩할 정도였다.

우리는 지금까지 유대인을 학살한 나치를 흑백논리에 의해 판단했었다. 유대인은 동정 받아야 할 존재로, 나치는 죽어 마땅한 존재로 치부해왔다. 하지만 영화를 보면서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나치가 죄를 저지른 것은 사실이지만 그도 한 명의 인간일 뿐이다. 영화 속 극장을 방문한 고위직 나치의 가족들은 그들이 직접적으로 가담하지 않았어도 죽음이라는 값을 치러야했다. 이런 식의 복수라면, 먼저 시작을 하고 안하고의 차이이지 그들과 마찬가지로 똑같은 실수를 저지르고 있는 것이다.

며칠 전 한 교양 수업에서 존엄사에 대해 다룬 적이 있었다. 또한 사형수와 교도관의 이야기를 다룬 ‘집행자’라는 영화에 대해 친구와 얘기 한 적이 있었다. 영화 ‘집행자’는 교도관이 사형수를 사형 집행하는 과정에서의 고뇌와 갈등을 그린다. 인간의 생명은 그 누구도 함부로 침해할 수 없는 영역임에도 전쟁과 의료기술과 법이라는 타이틀 아래 침해당하고 있다는 것을 새삼 의식했다. 혹자는 영화를 보며 통쾌하다고 했지만 나에게는 무감각해진 머리에 생각할 기회를 준 영화였다. ‘생존권’이라는 인간으로서의 최소한의 기본 권리는 상대가 어떤 죄악을 저질렀어도 함부로 침해할 수 없는 것이지 않을까.

이나래(교육 06)

저작권자 © 숙대신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