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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한 사람에게만 돈 빌려드립니다"
민유경 기자  |  smpmyk75@sm.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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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09.0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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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3년, 방글라데시에 이상한 은행이 나타났다. ‘그라민’이라는 이름을 내건 이 은행은 다음과 같은 사람들에게만 돈을 빌려준다. 농사지을 땅이 없는 사람, 재산이 없어 저당 잡힐 담보가 없는 사람, 문맹인 사람, 남성보다 여성이 그들의 주요 고객이다. 이 은행은 며칠 동안이나 문을 열었을까? 결과는 대다수 사람들의 예상을 뛰어넘었다. 은행은 문을 연 지 10년 만에 흑자경영으로 돌아섰고, 대출 상환율은 98%를 넘겼다. 26년이 지난 현재, 자국 내 지점이 2500여개로 늘어났다. ‘마이크로 크레딧(Micro Credit)’, 바로 무담보 소액 대출이 그라민 은행의 주요 사업이다. 이러한 터무니없어 보이는 사업이 어떻게 성공할 수 있었을까?

그라민 은행의 설립자 무하마드 유누스는 경제학과 교수 재직시절 방글라데시에 몰아닥친 기아사태를 보면서 자신의 전공에 회의를 느꼈다. 길거리에 사람들이 죽어있는 모습은 일상이었다. 외국의 원조는 관료들을 위해 쓰이고 수익은 다시 외국으로 돌아가 빈민을 살리는데 까지는 미치지 못했다. 그는 강단을 떠나서 빈민을 위한 은행을 만들었다. “길바닥에서 사람들이 굶어죽는데 경제학 이론이 무슨 소용인가.” 그렇게 세계 최대 빈곤국의 은행은 대부분의 은행들과 다른 길을 시작할 수 있었다. 그라민 은행은 오직 차별적 금융제도가 외면한 사람들을 위해서만 영업했다. 가난한 사람들에게 적선이 아닌 평등한 기회를 주기 위해 노력했다.

그라민 은행은 빈민들에게 담보 없이 돈을 빌려주고 경제적으로 독립할 수 있도록 지원했다. 가난한 사람이 빌린 돈으로 창업을 할 수 있도록 도왔다. 그라민 은행은 먼저 일주일 단위의 상환 제도를 마련했다. 원금의 상환기간을 1년으로 정하고 일주일에 한 번씩 원금을 분할해 받았다. 50주에 걸쳐서 매주 원금의 2%를 돌려받도록 한 것이다. 대출을 받은 후 일주일이 지나면 바로 원금 상환이 시작됐다. 또한 그라민 은행은 개인이 아닌 그룹에게만 돈을 빌려 줬다. 5명으로 그룹이 구성되면 첫 번째 사람에게 먼저 돈을 준 다음 다른 두 사람에게 돈을 빌려준다. 이들이 처음 6주 동안 원금을 제대로 갚는다면 나머지 두 사람에게도 돈을 빌려주는 방식이다. 그룹원 중 누구라도 계약 조건을 어기는 경우, 그룹원은 더 이상 돈을 받을 수 없다는 원칙도 정했다. 그룹을 만들자 사람들은 서로 도움을 받고, 경쟁심도 생겨 돈을 갚기 위한 계획을 세워 행동했다.

그러자 대출금 상환율이 낮을 것이라는 주위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95%이상의 높은 상환율을 보였으며, 대출하는 액수도 커져갔다. 가난에 시달리던 이들이 대출금을 통해 암소나 인력거, 물건 등을 구입해 매주 대출금을 조금씩 갚고, 결국 그것들을 자신의 소유로 만들었다. 물론 그라민 은행이 순탄하게 발전하지만은 않았다. 지점이 확대되면서 직원의 부정과 비리, 대출금의 저조한 상환 등의 위기를 겪기도 했다. 일부에서는 그라민 은행의 성공을 유누스 개인의 문제로 치부해버리기 일쑤였다.

그러나 그라민 은행이 설립된 지 26년이 흐른 지금, 그라민 은행으로부터 돈을 빌린 사람들의 49%가 가난의 문턱을 벗어났다. 가난한 사람들은 스스로 그라민 은행의 주주가 됐다. 또한 그라민 은행은 95년부터 기부금을 전혀 받지 않으면서 높은 이자율과 가난한 사람들이 맡긴 예금으로만 운영되고 있다.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의료, 전화, 전기, 양어장 사업 등을 통해 그들에게 일자리와 소유지분도 돌려주고 있다. 그라민 은행은 결국 성공적으로 지역 사람들의 자립에 도움을 주었다. 거시적 이념이나 시스템은 그것을 할 수 없었다.

그라민 은행은 가난한 사람에게서도 희망을 보았다. 가난한 사람에게 보낸 무한한 신뢰. 현대 자본주의가 풀 수 없었던 문제를 해결해 나가고 있는 힘일 것이다. 터무니없어 보였던 그라민 은행의 성공은 우연일까. 인간을 살리고, 영혼을 담은 금융. 그라민 은행이 추구하는 가치를 주목해 본다.



“우리는 자선을 베푸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사업을 하고 있다.”
"명석한 경제학자들은 대개 가난이나 기근에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 경제가 발전하면 자연히 해결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가난이란 통계수치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가난한 사람들이란 집단수용소처럼 따로 격리되어 살아가는 부류가 아니며 죽는다고 사라지는 것도 아니다. 소액융자는 경제적 자산이 아니라 인간적 자산을 일깨우는 수단이다. 그것은 우리 인간이 가진 꿈을 일깨움으로서, 가난한 사람들로 하여금 인간 존엄성과 존중의 마음을 갖도록 만들고 스스로 삶에 의미를 부여하도록 하는 것이다"

그라민 은행의 설립자 유누스. 유누스와 그라민 은행은 2006년 노벨 평화상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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