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 용어 대신 일상어… 전달력 높아진 재판 풍경
'제대로 된'배심원이 국민참여재판의 필수 요소


국민참여재판(이하 참여재판)이 시행된 지 1년이 지났다. 사법부의 오심이나 공직자의 공권력 남용에 대한 대안으로 시작된 참여재판이 지난 1년간 어떤 성과를 가져왔는지 살펴보자.


우리나라에 도입된 참여재판제도는 미국과 독일 등에서 시행되고 있던 배심원제도를 기초로 한다. 배심원제도는 법조인 외에 사건에 직접적인 관련이 없는 일반 시민에게 재판의 열람과 판결에 참여할 수 있는 일정 자격을 줌으로써 판사가 판결을 독단적으로 내릴 수 없게 한다.


우리나라에 이 제도가 들어오게 된 데는 2005년 설립된 사법제도개혁추진위원회의 한승헌 변호사의 역할이 컸다. 수십 년 간 검사와 변호사로 활동했던 한 변호사는 법원과 검찰의 일방적인 판결에 범죄자의 인권이 침해되는 것을 최대한 막기 위해 이 제도를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외국 영화에서나 볼 수 있었던 배심원 제도의 도입에 여론과 언론은 주목했고, 많은 논란을 뒤로 한 채 2008년 1월 1일 참여재판은 대한민국 사법제도의 한 부분을 차지하게 됐다.


배심원은 만 20세 이상의 대한민국 국민으로 해당 지방법원이 속한 지역에 거주하는 주민 중 무작위로 선발된다. 그러나 전과가 있는 사람이나 변호사, 경찰관 등 특정 직업을 가진 사람은 선발에서 배제된다. 영미권의 배심원제도에서는 배심원들의 유ㆍ무죄 판결을 판사가 그대로 따르지만 우리나라의 참여재판에서는 판사가 배심원의 평결과 달리 독자적 결정을 내릴 수 있다. 원칙적으로는 무작위로 선정된 만큼 직접적인 법적 구속력을 갖지 않는 것이다. 그러나 배심원들은 실제 전 재판과정을 관람하고 의견을 제시하는 등 재판 결과에 간접적인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


그래서 도입 초기 비(非)법률 전문가가 잘못된 판단을 할 수 있다는 우려가 컸다. 그러나 서울광주지법에서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배심원 평결과 재판부 판결이 일치한 사건은 전체 사건의 88%에 이르렀다. 재판부 측에서 배심원단의 평결을 받아들임으로써 배심원 제도가 재판에 분명한 영향을 끼치고 있는 것이다.


참여재판을 통해 법정 안에서의 소통이 활발해진 점도 높이 평가된다. 전문 용어로 진행됐던 기존의 재판 관행이 일반인 배심원단을 위해 쉽게 설명하는 것으로 바뀌었다. 증거 자료에도 영상물이 등장하고 변론 기법도 이해하기 쉬워졌다. 그러나 검사와 변호사 등 재판에 참여하는 법조인의 화법이 더 개선돼야 한다는 의견이 여전히 제기되고 있다. 오랫동안 전문가들끼리 진행하는 재판에 익숙하다 보니 배심원들을 설득시키는 데 부족한 모습을 보이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큰 문제는 참여재판의 수가 너무 적다는 점이다. 특히 수도권에서 시행이 부진한데, 이는 참여재판의 발전을 저해한다. 또 참여재판으로 진행되는 사건이 너무 단순하다는 비판도 제기되고 있다. 배심원의 참여율을 높이기 위해 복잡한 사건은 배제되는 경우가 많다 보니, 유죄나 무죄를 가리는 재판이 아닌 죄가 확정된 피고인의 형량만을 결정하는 재판이 참여재판의 절반 이상을 차지한다. 이 때문에 참여재판의 효용성에 대한 논란이 불거지는 것이다.


항소율이 높은 것은 참여재판 시행 초기부터 문제로 지적돼 왔다. 참여재판으로 다뤄지는 사건이 살인ㆍ강도상해ㆍ성범죄 등 강력 범죄가 대부분이다 보니 피고인과 검찰 모두 형량에 불만을 갖는 경우가 많다. 심지어 강력범죄 재판에 참여한 배심원들 중 일부는 재판결과에 불만을 품고 보복을 할지도 모른다는 걱정을 하기도 한다.


또 일반적으로 아침에 배심원이 채택되고 저녁에 심의를 마치는 등 하루 만에 모든 재판이 끝나는 경우가 많다. 길게는 7시간까지 재판이 이어지기도 하는데 이로 인한 배심원들의 피로가 또 하나의 문제점으로 꼽히고 있다. 재판 절차가 너무 빠름과 동시에 비효율적으로 진행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인 것이다.


이러한 문제점들에 비롯해 서완석(원광대학교 법학 전공) 교수는 “국민참여재판제도의 성공 여부가 배심원의 손에 달려 있는 만큼, 배심원들의 명확한 선정 기준이 필요하고 배심원단의 오판 가능성을 줄일 수 있는 개선 방안이 강구돼야 한다. 무엇보다도 선정된 배심원들의 적극적인 참여 자세가 요구된다”라고 말했다.


현대 사회에서는 국민의 주권을 보다 실질적으로 구현하기 위해 세분화된 제도를 계속해서 내놓고 있다. 현대 민주국가라는 관점에서 다양한 국민들의 의사를 반영하기 위한 노력인 것이다. 이경열(법학 전공) 교수는 “국민참여재판은 사법에 민주적 정당성과 투명성을 강화하고 나아가 국민으로부터 신뢰받는 사법부를 확립하려는 취지에서 마련된 제도”라고 말한다. 과거 ‘철옹성’이라고까지 불릴 만큼 시민과의 거리가 멀었던 사법부도 국민이 이해할 수 있는 재판으로 민주적인 면모를 갖춰가고 있다. 국민참여재판제도로 실질적인 국민주권주의가 실현될 수 있을지, 그 발전 여부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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