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31년 알렉시스 토크빌은 감옥제도를 연구한다는 명분으로 미국을 여행했다. 귀국하여 <미국의 민주주의>를 저술했는데, 거의 두 세기가 지난 오늘날 미국의 정치와 사회를 분석할 때도 매우 유용하다. 그리고 2004년 현대 프랑스를 대표하는 전방위 철학자 베르나르-앙리 레비가 토크빌의 발자취를 따라 여행하며 미국 문화를 체험한 내용을 <아메리칸 버티고>로 출간했다. 토크빌을 넘어서기가 쉬운 일은 아니지만, 혹시 레비라면 그 일을 해낼 수 있지 않을까?


레비는 미국 젊은이라면 한번쯤 꿈꾸는 대륙횡단처럼 ‘길’에 자신을 내맡기는 방식을 택했다. 길에서는 프랑스의 대철학자라는 명망도 소용없다. 그가 시카고로 이어지는 94번 고속도로에서 볼일을 보러 차를 세웠다가(고속도로에서의 정차는 불법이다) 교통경찰에게 검문을 당하면서 자신이 얼마나 유명한 철학자인지를 소개하려다 좌절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잠시 후 레비가 “나는 지금 토크빌의 행적을 좇는 책을 집필하고 있다”고 말하자 경찰은 갑자기 친절해지면서 ‘토크빌의 진단 중 아직도 유효한 것이 무엇인가’라고 진지하게 묻기 시작한다. 유일 강대국이면서도 남의 거울에 비춰진 자신의 얼굴에 대해 끊임없이 신경을 쓴다는 점에서 미국은 로마제국이나 명·청 같은 옛 제국과 다르다.


레비의 강점은 여기서 드러난다. 그는 멕시코로부터의 밀입국자를 단속하는 업무를 맡은 히스패닉계 순찰대원(그 역시 불법이민자 출신이다)에게 그의 공적 역할을 묻는 대신 “동족을 체포한다는 데에 부담되지 않느냐”라며 사적인 감정에 대해 물어봐야 했다. 공적으로는 “나는 미국인이고, 미국인으로서의 임무를 수행할 뿐”이라는 뻔한 답만 나오기 때문이다. 이것이 미국 사회의 힘의 근원이라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준법 정신, 도덕적 가치, 공동체에의 헌신 등 미국을 미국답게 만들어 온 기존의 공공 덕목들, 그러나 그 관례화되어버린 그 덕목들은 이제 미국이 스스로를 반성하려는 노력조차 수포로 돌리는 요인이 돼버렸다. 진보주의자들조차 우파의 슬로건인 도덕주의의 눈치를 보면서, 시급한 개혁 과제와 씨름하기보다는 개인 차원의 도덕적(?) 흠결을 줄이는 데 급급하게 됐다. 그러므로 이제 미국에 대해 공적으로 문제를 제기하려면 사적인 영역을 끄집어내지 않을 수 없다. 인종과 성별에 따른 ‘차별이 없는’ 미국 사회에서 ‘불평등’을 말하려면 다시 인종과 성을 끄집어내 미국인들을 불편하게 해야 한다. 총기 소지의 문제점을 지적하려면 그 ‘헌법적 권리’ 대신 “빈 라덴 소유의 총도 팔 거요?”라고 질문을 해야 한다.


이러한 통찰력의 소유자인 레비에게 친미냐 반미냐 하는 구태의연한 도식은 학문적으로 폐기되어야 할 허위이다. 알베르 카뮈의 이름과 겹쳐지는 전설적인 잡지 <콩바(Combat)>의 특파원으로 전장을 누빈 청년 레비가 그랬듯, 노년의 레비는 뉴포트에서 샌디에이고까지 다시 미시간에서 뉴올리안즈까지 종횡하며 공적 담론의 휘장 아래로 파고든 레지스탕스가 되어, 타락해가면서도 타락의 현상과 원인을 엉뚱한 데서 찾는 미국 문화를 진단한다.


재미있는 것은 “미국인들은 사소한 것까지 전시하고 기념한다”는 레비의 조롱 섞인 분석이야말로 이 책의 출생 비밀과 관련이 있다는 점이다. 프랑스 지성계에서 한동안 잊혀졌던 토크빌의 탄생 200주년(2005년)을 맞아 미국 시사월간지 <애틀랜틱 먼슬리>가 기획한 기념사업으로 구상된 책이기 때문이다. 그토록 자유로운 개인들로 구성된 미국 사회가 개인주의의 원심력에 분해되지 않았던 이유는 바로 자신들의 오늘을 형성시킨 과거와 언제든 대화하려는 이러한 역사적 구심력 때문이 아닐까?

이황직(의사소통센터)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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