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리뷰 - <나무없는 산> / 감독 김소영

 

영화 리뷰 - <나무없는 산> / 감독 김소영 

지난 제 11회 서울국제여성영화제의 새로운 물결(New Currents)섹션에서는 영화 <나무없는 산>이 상영됐다. 영화 <나무없는 산>은 <방황하는 날들>로 베를린영화제와 부에노스아이레스 국제독립영화제에서 주목을 받았던 김소영 감독의 신작이다. 이번 영화제의 두 차례 상영에서 관객들의 관심이 쏠려 티켓이 모두 매진됐다.

영화는 혼자 힘으로 생계를 꾸리기가 힘들어진 진과 빈의 엄마가 두 자매를 고모에게 맡기는 것으로 시작된다. 엄마는 두 딸과 헤어지기 전 돼지저금통을 쥐어주며 이 저금통이 가득차면 돌아오겠노라고 약속하고 떠난다. 그러나 고모는 알코올중독자이기 때문에 진과 빈을 돌볼 여력이 없다. 고모의 무관심 속에서 진과 빈은 엄마와 헤어지며 느꼈던 ‘관계의 단절’을 또 한 번 겪는다. 자신을 돌봐줄 보호자와 관심의 부재 속에서 이 연약한 자매는 무엇이든 스스로 해결할 수밖에 없는 상황으로 내몰린다. 돼지저금통을 채우기 위해서 메뚜기구이장사를 하고, 배고픔을 해결하기 위해 염치를 무릅쓰고 옆집아이네 집에 놀러가 간식을 얻어먹는다.

그러나 고모는 그들의 존재만으로도 부담을 느껴 이들을 외가로 보내기로 결심한다. 시골에서 외할머니와 함께 지내며 아이들은 삶에 무게에 짓눌려 내뱉을 수 없었던 말들을 조잘조잘 떠들기도 하고, 외할머니께 신발을 사달라고 투정을 부리기도 한다. 영화의 마지막은 신발을 사달라고 조르던 자매가 낡은 외할머니의 신발을 보고 멈칫하는 장면이다. 이내 그들은 할머니께 신발을 사신으시라며 그들의 한줄기 희망과도 같았던 저금통을 전해드린다.

이 영화는 어려운 생활 속에서 두 자매가 느끼는 상실감, 외로움 등을 사실적으로 담아낸다. 또 진과 빈을 통해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살고자 노력하는 인간의 가장 근원적인 모습을 잡아냈다. 진과 빈의 고군분투하는 모습은 그들을 돌보는 ‘어른여성’의 모습과 오버랩 된다. 영화 속에 등장하는 ‘어른여성’. 즉, 엄마와 고모 그리고 외할머니는 모두 피할 수 없는 노동과 육아책임 그리고 이 모든 것을 스스로 해결해야하는 삶의 굴레를 짊어지고 있다.

엄마는 집을 나가버린 아버지 때문에 경제적 활동과 두 자매의 육아도 혼자 책임을 져야한다. 고모는 혼자 살며 겪는 고독감을 달래기 위해 술에 의존하며 자신조차 추스를 수 없는 상태이다. 또 외할머니는 허리가 굽어 걷기도 버거워 보이나 끊임없이 나무를 구하러 다니고, 청소를 한다. 엄마와 고모 그리고 외할머니로 이어지는 진과 빈에 대한 돌봄의 책임은 그들의 어깨를 더욱더 무겁게 한다. 영화는 노동과 물질적 가난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없는 진과 빈 그리고 ‘어른여성’을 찬찬히 꿰뚫어보고 있다.

영화는 진과 빈이 흙언덕에 이미 말라 죽은 나무를 심으려 애쓰는 모습을 반복해 보여줌으로써 삶의 굴레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인간, 그리고 그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여성의 모습을 이끌어낸다. 이러한 삶의 굴레는 진과 빈에게도 연결돼 결국 ‘어른여성’과 유사한 삶을 살게 될지도 모른다 말하고 있다. 하지만 영화는 두 자매가 고난과 외로움의 굴레 속에서도 담담하게 노력하며 삶을 이어가야함을 나지막하게 이야기 한다. 그리고 관객들에게는 삶의 굴레를 짊어진 그들을 외면하기보다 우리가 그 굴레를 함께 나눠 짊어질 수 있는 관심과 용기를 지녀야 함을 상기시켜준다.

영화의 매 장면은 관찰자의 입장에서 진과 빈의 감정을 놀랍도록 생생하게 표현한다. 그리고 영상은 전반적으로 뿌옇게 처리돼 누군가의 어린 시절을 회상하는 듯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이는 관객들의 머릿속에 진과 빈의 모습을 잔잔하지만 깊게 남기는 효과를 주며  다른 영화에서는 느낄 수 없는 색다른 인상을 준다. 몇몇 평론가는 이 작품이 김소영 감독의 어린 시절을 담은 자전적 영화라고 추측하기도 했다. 작은 두 자매의 이야기를 통해 애잔한 감성을 느낄 수 있는 이 영화에 주목해보자.

  

 

저작권자 © 숙대신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