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불쌍한 사나이가 있었다. 운명으로부터 버림받고, 세상 사람들에게도 외면당한 이 자는 홀로 자신의 서글픈 처지를 한탄하고 있었다. 하늘을 향해 아무리 울부짖어도 아무 소용이 없었다. 하늘은 귀머거리인가보다. 그는 자신의 운명을 저주했다. 주위를 둘러보니 다른 이들은 모두 자신보다 좋은 조건을 갖고 있었다. 어떤 이는 앞날이 보장돼 있었고, 어떤 이는 미모를 갖추고 있었다.

 

또 어떤 이는 친구가 많거나, 재주가 좋거나, 우수한 두뇌를 갖고 있었다. 모두 부러웠다. 자신은 정작 원하는 것을 아무 것도 갖고 있지 않은데, 모두들 어떻게 그리 복이 많은지, 할 수만 있으면 그들과 인생을 맞바꾸고 싶었다. 그는 자신을 경멸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문득 사랑하는 사람 생각이 났다. 그 달콤한 생각만으로도 마음이 풍요로워졌다. 그는 마치 황량한 겨울 들판에서 종달새가 솟구쳐 오르듯 하늘 문 앞에서 즐거운 노래를 부르고 있는 자신을 발견했다. 그리고는 자신의 처지를 제왕과도 바꾸지 않겠노라고 다짐한다.”


과연 운명이 그를 버렸겠으며 세상 모든 사람들이 그를 외면했겠는가. 세상을 비관적으로 보니 하늘조차도 귀머거리로 여겨진 것이겠지. 사랑하는 사람이 아무리 좋았기로서니 갑자기 온 세상이 천국이 될 리가 있겠는가. 그러나 또한 사랑하는 사람이 얼마나 좋았으면 이처럼 턱없이 과장된 고백을 했겠는가. 신파극처럼 보이는 이 이야기는 바로 셰익스피어의 소네트 29번의 내용이다.


세상에서 운 좋은 사람은 당할 자가 없다고 한다. 아무리 실력이 좋고, 열심히 노력해도 운 좋은 사람에게는 이길 수가 없다는 것이다. 재수있는 사람은 절벽에서 떨어져도 얼떨결에 천년 묵은 산삼뿌리를 붙잡는다는 우스갯소리도 있다. 물론 산삼뿌리가 뽑혀서 떨어져 죽으면 그만이겠지만. 오죽하면 고스톱 판에도 운칠기삼, 즉 운이 칠 할이고 기술이 삼 할이라는 말이 있겠는가. 누구는 운이 좋아 돈 많은 집 막내딸로 태어나고, 인기절정의 연예인이 되기도 하고, 별 노력을 하지 않고도 언제나 장학생이 되는가 하면, 멋진 남자친구들이 목을 매고 쫓아다니는데, 나는 운이 없어서 이 모양, 이 꼴이로구나 하면서 자신의 신세를 탓하는 이들을 나무랄 수만도 없다. 또한 막가는 우리 사회가 그런 풍조를 조장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운 좋은 사람이 부럽다고 해서 언제까지나 신세타령만 하고 있을 수는 없지 않은가. 내게 주어진 복을 생각하고 그로써 천국까지 가는 것은 아니라 할지라도 하루하루를 즐겁게 여기며 사는 방법도 있지 않은가. 소네트의 화자처럼 사랑하는 사람이 있으면 더욱 좋겠지만, 그렇지 않더라도 우리를 사랑하고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들은 언제나 있는 법이다. 대체로 우리가 그것을 인식하지 못하고 살아서 그렇지. 이들을 생각하면 새삼스레 주변이 밝아지고 뿌듯함이 가슴을 채운다. 이것이 운 좋은 것이 아니라면 무엇이란 말인가. 문제는 저 인간이 나보다 더 운이 좋은 것 같다고 여기는데 있는 것이다.

 

 그러나 생각해보면 운 좋은 그도 틀림없이 누군가를 부러워하고 있을 것이다. 그보다 더 운 좋은 인간은 반드시 있는 법이니까. 결국 운이 좋다는 것은 시각의 문제이지 사실의 문제가 아닌 것이다. 그러므로 운칠기삼은 인생에 적용해도 맞는 말이다. 행복해지기 위해서는 자신의 인생을 어떤 시각으로 바라보는가 하는 것이 칠 할이고, 타고난 능력은 삼할밖에 차지하지 않는다. 아, 정말 인생은 공평하다.

임성균 (영어영문학부 르네상스영문학전공)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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