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 10시. 불과 몇 개월 전 내가 야간자율학습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오던 시간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하루의 피로와 긴장을 풀고 자신만의 여유를 가질 시간이다. 하지만 수험생인 나에게 그 시간의 ‘여유’란 내일 더 큰 짐을 안겨 줄 ‘사치’일 뿐이었다. 너무 피곤해 침대에 누워 여유를 부리는 척 해도 내 마음은 결코 여유롭지 못할 것임을 잘 알고 있었기에 굳이 공부를 하지 않더라도 나는 습관적으로 책상 앞에 앉았다.


내가 고등학교를 졸업한 지 벌써 두 달이 지났다. 하지만 10시가 되면 우리 가족은 어김없이 안쓰러운 눈길로 누군가를 맞이한다. 바로 올 해 중학교에 입학한 내 남동생이다. 한창 클 나이인 동생은 가방을 내려놓기가 무섭게 부엌으로 달려가 허기를 채운다. 그리고는 내가 그랬듯 책상에 앉는다. 반 강제로 책상에 앉기는 하지만 자의에 의해서든 타의에 의해서든 수험생과 같은 생활을 중학교 입학과 함께 시작한 것이다.


가끔 공부하기 싫어 꾀를 부리는 동생을 보면 그냥 놀게 해 주고 싶다가도 이내 잔소리가 튀어나온다. 학교가 깊이 있는 학문의 장이 아닌 특목고 입학, 명문대 입학을 위한 경쟁의 공간으로 전락하고 있는 현실. 그 속에서 많은 시행착오를 겪어온 나이기에 동생에게는 나보다 더 많은 기회와 가능성을 주고 싶기 때문이다. 물론 특목고, 명문대 입학이 보다 많은 기회와 가능성을 보장하지는 않는다. 인생을 살아가는 데 100점짜리 시험지보다 한 권의 책이 더 가치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우리 사회에선 100점짜리 시험지만이 가치있게 여겨지는 경우가 많다.


대학에 입학한다고 해서 모든 것이 해결될 것이라는 기대는 애초에 하지도 않았다. 하지만내가 수험생일 때 누리지 못했던 여유는 마음껏 누려 보리라 생각했었다. 그런데 막상 대학에 와 좀 여유를 부려 볼까... 생각하는 순간 ‘숙제여대’라는 별칭에 걸맞게 밀려드는 과제와, 얼마 남지 않은 첫 시험이 나를 압박한다. 또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청년 실업에 관한 뉴스들은 내 마음을 더 조급하게 만든다. 중학교, 고등학교의 경쟁에서 살아남아 대학에 합격한 기쁨도 잠시. 다시 무한 경쟁 체제에 뛰어들어야 하는 현실을 몸소 체험하니 동생이 더욱 안쓰럽게 느껴진다. 오늘도 밤늦게 지쳐 돌아올 동생에게 나는 무슨 격려의 말을 건네야 할까?
이윤지(인문 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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