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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익선 동문은 '내일도 맑음'"교문 밖에서도 숙명이 함께할 수 있도록 힘이 되고 싶어요"
남근령 기자  |  smpngr75@sookmyung.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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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09.0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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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상캐스터는 남자여야 한다는 시절이 있었다. 김동완 기상청 통보관을 시작으로 조석준, 이찬휘 캐스터 등 1990년 초까지도 남성 기상캐스터 시대가 이어졌다. 이 때 남성들의 영역이었던 기상캐스터란 직업에 여풍을 몰고 온 이가 있었다. 국내 최초의 여성 기상캐스터 이익선(아동복지 91졸)아나운서다. 그를 만나봤다.

'자신감'이 잡은 '최초'는 기회
기상캐스터를 뽑는 날 아침, 평소 친분이 있었던 박찬숙(국어국문 68졸, 제17대 국회의원) 동문이 이 동문에게 전화를 걸어 오디션에 참가하라고 말했다고. 부랴부랴 방송국으로 향한 이 동문은 이미 지각한 상태였다. 그러나 심사위원들이 마지막으로 한명만 더 보길 원했고 그렇게 해서 이 동문은 기회를 얻었다. “사실 저는 제가 최초의 기상캐스터가 될 것이라곤 상상도 못했어요”라고 말하는 이 동문이지만, 그의 특유의 발랄함과 똑 부러지는 말솜씨는 심사위원들을 사로잡았고, 최초의 여성 기상캐스터로 첫발을 내딛을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러나 이 동문은 방송인이라는 확고한 꿈을 가졌던 것은 아니라고 고백했다. 그러나 항상 ‘나는 다 잘 될 꺼야’라는 자신감을 갖고 있었다고 한다. 이 동문은 “저는 무엇을 하든 재밌게 할 수 있고 열심히 임했기 때문에 어떤 일이든 자신 있었어요. 그런 자신감과 긍정적인 생각이 기상캐스터를 뽑는 오디션 장에서도 발휘 될 수 있었던 것 같아요”라고 말했다.


1991년, 그렇게 KBS1 뉴스광장에 그녀가 등장한 뒤, 기상캐스터는 부드럽고 상냥한 여성적 이미지로 변화 했다. 오래지 않아 각 방송사마다 많은 팬을 확보한 여성 기상캐스터 전성시대가 나타났다.
그러나 최초라는 이름은 외로울 수밖에 없었다. 가장 큰 문제는 그에게 여성 기상캐스터로서 역할 모델이 없었다는 점이었다. 그래서 여성 기상캐스터로서 이미지를 구축하기까지 이 동문은 많은 고민과 방황을 해야 했다고 한다. 이 동문은 “여성 캐스터만의 방식을 만들기 위해 아나운서 방식, 리포터 방식 등을 따라해 보기도 했어요. 그러나 기상캐스터와는 방송 진행 방식이 맞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죠”라며 “처음에는 무조건 실수를 안 하려고 했어요. 그러자 점점 실수가 줄어들면서 나만의 스타일을 찾게 됐고, 2년이라는 시간이 걸렸네요”라고 회상했다.

새로운변화, 위기를 극복하는 원동력

그 후 그는 기상캐스터뿐 아니라 방송진행도 맡았다. 그가 이제까지 진행했던 프로그램은 ‘연예가중계’ ‘시네마 천국’ 등을 포함해 총 25개 정도 된다. 이 중에서 그는 ‘시네마 천국’을 진행했던 일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한다. “‘시네마 천국’은 제가 초대 MC로 활동했을 뿐 아니라 프로그램을 진행하면서 영화에 관심을 얻게 돼 영상예술학 대학원을 진학한 계기가 됐어요.” 이야기를 들으니 대학원까지 진학하게 된 직접적인 계기가 궁금해졌다. 이 동문은 간단하게도 ‘프로그램을 진행하면서 하염없이 느꼈던 열등감 때문’이라고 말했다. ‘시네마 천국’은 PD에서부터 작가까지 영화 전문가들이 만드는 프로그램이었다. 이 동문은 진행자로서 프로그램을 매끄럽게 진행해야만 했다. 그래서 영화에대해 잘 알고 있는 것처럼 방송원고를 외워야 했다고. 이것이 이 동문을 대학원까지 진학하게 만든 계기라고 했다. 이렇게 노력한 덕분일까 ‘시네마 천국’은 EBS 방송 프로그램 최초로 두 자리 수의 시청률을 기록하기도 했다.

이런 그도 사회생활을 하면서 힘든 순간이 있었다. “사회생활을 하면서 누구나 업무와 동료간의 문제를 겪을 수 있어요. 그러나 잘 생각해보면 원인이 자신에게 있다고 생각해요.” 일이 익숙해지면 일을 게을리 하게 되고 노력은 하지 않으면서, 나보다 잘난 타인을 시기하게 돼 결국 프로다운 모습을 잃게 된다는 것이다. 이 동문은 방송활동을 하면서 이러한 매너리즘에 빠졌던 시기가 가장 힘들었다고 털어 놓았다.


그렇다면 20년 동안 방송 활동을 하며 깨달은 그녀만의 매너리즘 극복법이 있지 않을까. 이 동문은 지루한 일상을 바꿀 수 없다면 다른 것에서 즐거움을 찾으라고 조언했다. 이 동문은 업무의 순서를 바꿔보는 것을 예로 들어 설명했다. “원래의 업무순서가 ABCD였다면 ACDB로도 해보고, BCAD로도 해보는 거예요. 업무의 결과는 같더라도, 과정을 달리하면 긴장감과 색다른 생동감을 느낄 수 있죠.”


그의 또 다른 극복방법은 자신이 하지 않았던 것을 시도해 보는 것이라고 한다. 그래서 이 동문은 처음으로 방송에서 우비를 입고 기상예보를 진행했다. 이전에는 스튜디오 안에서 우비를 입고 방송을 진행한다는 것은 아무도 생각지 못한 일이었다. “우비를 입고 촬영을 하던 날, ‘잘리는 것이 아닌가’ 하는 두려움 속에서 방송을 시작했어요.” 그러나 예상과는 달리 사람들의 반응은 매우 호의적이었다. 딱딱했던 기존의 일기예보에 약간의 이벤트를 가미했던 그의 아이디어는 지금도 많은 캐스터들이 활용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이 동문은 “이러한 도전정신이 자신이 살아있다는 것을 느끼게 하고 스스로를 재발견하게 해주는 것 같아요”라고 말했다.

프로의 조건 '능력, 배려, 즐거움'
학창시절 이야기를 꺼내니 이 동문은 가장 어려운 질문이라며 쑥스러운 듯 말했다. “저는 여중, 여고를 나와서 여대를 들어갔기 때문에 세상경험을 해보고 싶었어요. 그래서 학내 방송국 SBS와 방송관련 아르바이트 활동을 주로 했어요.” 그러나 학내 방송국일이 많다보니 학업에 열중할 시간이 부족할 수밖에 없었다. “3학년 1학기 성적까지로 2급 정교사 자격증을 줬었는데, 방송국 일에 신경을 많이 쓰다 보니 성적이 좋지 못해 자격증을 따지 못했죠.” 그는 방송 관련일 외에도 학생을 가르치는 일에서부터 서빙, 설문지조사, 동사무소 아르바이트 등 다양한 사회 경험을 쌓기 위해 노력했다고 한다. “학사성적은 비록 좋지 않지만 학창시절에 할 수 있는 다양한 경험을 쌓을 수 있어서 후회하지 않아요.”


이러한 다양한 경험들은 이 동문을 지금의 방송 프로가 되기까지의 밑받침이 됐다. 이 동문은 그동안의 경험을 바탕으로 숙명인들에게 프로가 되기 위한 세 가지 조건을 제안했다. “일단은 기본적으로 일을 능히 해낼 만큼의, 혹은 그 이상까지 해낼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 해요. 프로의 세계에서는 능력이 뒷받침되지 않고서야 어떤 것도 용서가 안돼요.” 능력을 갖추는 것이 기본중의 기본이라면 그 다음으로 요구되는 것이 사람의 됨됨이다. 이 동문은 “남을 배려하게 되면 내가 존중받게 되고 남을 높여주면 내가 낮아지는 것이 아니라, 내가 높아지는 것이에요”라며 나만 먼저 생각하기 보다는 남을 배려하라고 조언했다. “타인에 대한 배려를 알아가기 위해선 사람들과 모임을 자주 갖고 그곳에서 자신이 주도적으로 활동을 해보는 것도 자신의 됨됨이를 키울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거예요.” 이 동문은 프로가 되기 위한 마지막 조건으로 삶을 즐길 줄 아는 능력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악기든 춤이든 스포츠든 기타 취미활동이든, 자신이 즐길 수 있는 취미활동을 만드세요. 그러면 이전보다 더 윤택한 삶을 살 수 있고 삶의 질이 달라질 수 있어요.”

'숙명'이라는 이름의 소중함
기상캐스터로 방송을 시작한 이 동문은 현재 프리랜서로 활동 중이다. YTN, 국군방송 등 여러 방송국에서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으면서도 최근 다른 기상캐스터들과 함께『내일은 맑음』이라는 책도 펴냈다. 이런 일정에도 불구하고 학교의 중요한 행사에는 빠지지 않고 참석해 남다른 학교사랑을 보인다. 이 동문은 인터뷰가 있던 지난 3월 13일에도 리더십개발원에서 주최하는 ‘최고지도자과정 입학식’ 행사에 참석해 자리를 한 층 빛냈다. 이렇게 학교를 위한 일이라면 기꺼이 참여하는 그에게 숙명이란 무엇일까? “이경숙 전 총장님도 말씀하셨죠. 국적, 주소는 바꿀 수 있지만 학적은 바꾸지 못 해요. 숙명여대는 평생 제가 안고 가야할 혈연 같은 존재예요.” 이 동문은 사회생활을 할수록 ‘숙명’이라는 울타리의 소중함을 느낀다고 한다. “학창시절에는 ‘학교가 나에게 무엇을 해줄까’를 많이 생각했었는데 지금은 ‘어떻게 하면 자신이 좀 더 학교에 도움이 될 수 있을까’를 늘 고민해요. 제가 주체가 돼 교문 밖에서도 숙명이 함께할 수 있는 힘이 됐으면 좋겠어요.”라고 말하는 이 동문의 마음에는 언제나 숙명이 최우선 순위로 자리 잡은 듯 했다.

밖에서는 프로 방송인으로, 가정에서는 두 아이의 어머니로 활동하는 바쁜 그녀에게도 앞으로 해보고 싶은 한 가지가 있다. “범사에 감사하며 주어진 일에 열심히 임하지만, 기회가 된다면 사람 냄새가 나는 프로그램을 진행해보고 싶어요.” 비록 유명인의 이야기가 아닌 일반인의 이야기라도, 사람사는 이야기를 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진행 해보는 것이 개인적인 바람이라는 이익선 동문. 그의 사람 냄새나는 프로그램을 보게 될 날이 머지않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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