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실에 학생기자들이 앉아있다. 대부분 컴퓨터 앞에 붙어 앉아 자판을 두드리고 있는 모습이다. 이렇게 한참을 앉아 있노라면 내가 기사를 쓰고 있는 건지 레포트를 쓰고 있는 건지 잊어버릴 때도 있다. 컴퓨터 앞에 앉아있는 모습은 별로 ‘기자답지’ 않기 때문이다. 필자가 스스로를 학보사 기자로 느낄 때는 주로 취재원을 만날 때이다.


교정에서 아무 학우나 붙잡아 의견을 물을 때, 행정부서의 선생님을 만날 때, 보안요원 아저씨와 야간순찰을 돌 때, 정신차려보니 총장실에 앉아있을 때가 그렇다. 취재원을 만날 때는 괜히 가슴이 뛰기도 하고 ‘이 맛에 이 고생하는 거다’ 싶을 만큼 즐거웠다.


물론, 백인백색이라고 모든 취재원들이 필자에게 호의적이기만 했던 것은 아니었다. 처음 숙대신보의 정식기자가 돼 취재를 다니던 때에는 몇몇 취재원들의 험한 소리와 모욕적인 태도에 눈물 흘린 적도 있었다. 그럴 때면 신문사고 뭐고 다 내던지고 싶어지기도 했지만 곧 내 머리를 쓰다듬는 데드라인의 서늘한 손길을 느끼고 또 다른 취재처로 걸음을 옮겨야 했다.


필자가, 기자라는 이름을 받은 지도 2년이 넘었다. 나름대로 ‘소처럼 일했다’고 생각했는데 지난 2년 동안 보도한 지면을 뒤적이니 아쉬움이 남는 것은 어쩔 수가 없다. 기사의 유려함이나 기술 문제보다는 취재원들의 말을 있는 그대로만 전달할 수 없었던 것에 대한 죄책감이 크다. 언론윤리의 제 1원칙은 객관성과 공정성이라지만 뉴스가 기자의 손으로 결정되고 기자의 입으로 전달되는 시스템 하에서 ‘객관보도’란 껍데기에 불과하다는 생각도 든다.


공자는 중용(中庸)과는 다른 의미로 정치적 중립을 지키는 기회주의자를 향원(鄕原)이라 칭했다. 또한 반체제ㆍ반정부적인 사람보다도 향원을 ‘사회와 국가의 존립을 위태롭게 하는 존재’로 규정하고 미워하고 또 두려워했다고 한다.


그동안 내 손을 거쳐 간 많은 기사들이 ‘객관보도’라는 허울에 집착해 진실을 외면하고 있지는 않았나 조바심이 든다. 중요한 것은 ‘공평무사하고 불편부당한가’가 아니라 그것이 ‘진리를 향하고 있는가’의 여부가 아닐까. 아마도 진실은 필자의 기사가 아니라 취재원들의 말에 있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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