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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최초, 하늘을 진두지휘하다대한항공 기장 신수진(정치외교91졸) 동문
민유경 기자  |  smpmyk75@sm.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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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09.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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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행기 조종석에는 두 개의 자리가 있다. 하나는 비행에 관련한 모든 일을 책임지는 기장, 다른 하나는 부기장의 것이다. 민간 항공기가 도입된 이후 지난 60년간, 국내에서 기장석은 여성에게 허락되지 않았던 자리였다. 지난해 11월, 마침내 그 벽이 무너졌다.
이 벽을 허물고 국내 첫 민항기 여기장이 된 신수진(정치외교 91졸) 동문을 김포공항에서 만났다. 소감을 묻자 신 동문은 “승무원의 멘트를 통해 처음으로 ‘신수진 기장’이 소개되는 순간, 가슴이 떨리더군요”라고 답했다.

우연히 잡은 조종간, 평생 놓고 싶지 않았다
신 동문이 어렸을 때부터 파일럿을 꿈꾸던 것은 아니었다. 신 동문은 대학시절 자신을 그저 평범한 학생이었다고 기억했다. “가끔 나는 10년 후에 무엇이 돼있을까? 라고 생각해도 마음속으로 그려지는 것은 없었어요. 그래도 ‘에이, 모르겠다’ 그러고 말았죠. 내가 무엇을 하고 싶은지 잘 몰랐어요.”
그러한 신 동문이 파일럿이라는 꿈을 가지게 된 계기는 우연히 찾아왔다. 미국 여행 중 헬리콥터 관광 비행기를 탔는데, 잠깐 조종간을 잡을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다. 그가 조종간을 잡자 작은 비행기는 의도대로 움직였다. “‘설마 내가 비행기 조종을 할 수 있을까’ 라고생각했는데, 당시 거기 있던 조종사가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라는 거에요.” 신 동문은 ‘한번 해볼까’라는 마음이 들었고, 이것은 곧 미국에서 자가용 비행기 면장을 취득하는 것으로 이어졌다.

한국으로 돌아온 뒤, 그녀는 비로소 자신이 무언가 하고 싶은 일이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 때는 몰랐는데, 돌아오고 나니 비행기를 조종하던 그 순간만 계속 떠오르는 거에요. 앞으로 비행기 조종을 안 하면 죽을 때 후회할 것 같은 느낌이 들었어요.” 그리고 신 동문은 미국에서 본격적인 비행공부를 하고자 부모님을 설득했다. “인생에서 아무 것도 이룬 것이 없다면 내 자신이 너무 불쌍할 것 같다고 했더니, 부모님도 흔쾌히 승낙해주시더라고요.” 그 당시 한국에서 여성이 조종사가 되기란 거의 불가능했기 때문에, 신 동문의 결정은 아예 미국에서 살겠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그만큼 그에게 ‘비행기 조종’은 간절한 일이었다.

짐을 싸고 푸는 생활의 연속, 그래도 행복한 비행기 조종
미국에서 비행공부를 마치고 비행학교 교관으로 근무하던 신 동문에게 운명처럼 다시 기회가 왔다. 미국에서 생활한지 일 년 만에, 마치 그를 기다렸다는 듯이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에서 최초로 여자 조종사 채용 공고가 난 것이다. 그 당시에는 비행면허를 취득한 여성이 드물어 기회를 잡은 사람은 신 동문뿐이었다. 한국으로 돌아온 1996년, 그는 대한항공 조종훈련생으로 입사했다.

기장이 되는 것은 멀고도 험한 길이었다. 신 동문이 기장석에 앉을 수 있게 되기까지 12년이라는 시간이 필요했다. “하면 할수록 쉽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짐을 쌌다가 푸는 생활의 연속이었죠. 국제선의 경우 일정이 10일씩 소요되니까요.” 그는 가족들을 두고 반복적으로 국외를 왔다갔다 하는 생활이 결코 녹록치 않았다고 털어놨다. “특히 낮에 비행기를 타면 햇빛과 직접적으로 마주하는데, 눈이 찢어질 것처럼 아파요. 또한 10시간 넘게 비행기를 조종하면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도 힘들지요.”

힘든 일은 이뿐만이 아니다. 파일럿은 승객들의 안전을 책임지는 직업인만큼 끊임없이 시험받아야 했다. “우리는 6개월 목숨이라고 하는데. 6개월에 한 번씩 자격시험을 보고, 1년에 한 번씩 신체검사를 받는데 어휴, 스트레스 많이 받죠.” 그러나 신 동문은 계속되는 스트레스의 압박에도 “힘들어도 곧 적응하게 되더군요. 정말 쉬운 일은 없는데, 그렇다고 못할 일도 없는 것 같아요”라고 덧붙였다.
기장이 되기 위해서는 부기장 경력 5년 이상, 4000시간 이상의 비행 경력이 필요하다. 경력이 충족되면 6개월간의 기장 훈련 과정을 거쳐 기장 승격 시험에 합격해야 한다. 때문에 신 동문은 6개월 동안 하루 서너시간만 자며 ‘기장 승격’ 목표달성에만 매달렸다.

기장이 된 뒤 달라진 점은 무엇일까. 그는 “기장과 부기장이 하는 일은 같다”고 말했다. 그러나 책임감은 그 무게가 달랐다. “수많은 승객이 타고 있는 비행기 내에서 최고 책임자는 바로 기장입니다. 그래서 비행에 어려움이 있으면 다 내 책임이라는 생각이 들고, 그 때 참 외롭다고 느꼈어요.” 그의 어깨에 자리 잡은 책임감이라는 짐이 막중하게만 보였다. 그러나 그는 “기장으로서 무사히 착륙하고 승객들이 나갈 때 그 뿌듯함은 말로 표현할 수 없다”며 즐거워했다. 활주로가 눈에 덮여 쉽지 않았던 착륙이 성공했을 때는 ‘대단하다’며 승객 모두의 칭찬을 받기도 했다.

한편 신 동문이 기장인 비행기에서는 이색적인 풍경이 펼쳐지기도 한다. 이륙 전, 그가 부드러운 목소리로 기장 멘트를 하면, 남성 기장의 굵직한 목소리를 기대한 승객들은 갑자기 소란스러워 진다는 것이다. 그가 부기장인지 기장인지 내기하는 승객도 있었고, 딸에게 전해 주고 싶다며 사인을 부탁하는 승객도 있었다고 한다.
또한 신 동문은 동료들에게도 인기 만점 기장이다. 그는 승무원들에게 ‘기장님, 완벽한 랜딩(착륙)이었어요. 기장님 짱이에요! 기장님 너무 재밌어요!’라는 말을 종종 듣는 다며 웃었다. 인터뷰 중에도 유머 있고 재치 넘치는 신 동문의 모습을 보며, 그의 인기 비결을 어느 정도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회색 구름에 가려진 푸른 하늘을 보자
신 동문에게는 비행기 조종을 하면서 가장 감동적인 순간이 있다. “구름 아래의 세상은 비가 내리고 회색빛인데, 구름 위로 올라가면 푸른 하늘에 뜨거운 태양이 타오르는 거에요. 그리고 동그란 무지개가 보이죠.” 그는 비행기가 구름을 뚫고 올라가는 순간을 인생에 비유했다. “그 광경을 보면서 힘들고 고된 일에도 언제나 죽어라 슬퍼할 필요도 없겠네? 그런 생각이 드는 거에요.” 이 경험을 통해 인생도 이와 같은 이치임을 깨닫게 되었다는 것이다.

신 동문은 자신이 느꼈던 바를 후배들에게 아낌없이 조언했다. “모두 너무 일찍 어른인 척 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대학교 4학년이나 20대 후반쯤 되면 인생이 다 끝났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종종 있어요. 인생이 마무리 된다고 여기고 지레 겁먹고 포기해 버리곤 하죠.” 그는 자신이 못할 것이라는 생각은 처음부터 접고, 어떤 일을 하고자하는 욕망을 가지라고 강조했다.

“제가 공감하는 말이 있어요. ‘20대는 끊임없이 방황하고 헤맬 수밖에 없는 시기, 30대는 지금까지 고민으로부터 무언가 찾아내서 시작 하는 시기, 40대는 그 일에서 나를 꽃피우는 시기. 50대는 하는 일을 즐길 수 있는 나이다’라는 말이요.”
숙명인들을 향한 애정을 듬뿍 담은 신 동문의 당부는 인터뷰가 끝날 때까지 끊이지 않았다. “나는 끊임없이 시작할 수 있고 도전할 수 있다고 생각해야 해요. 나이 먹었다고, 어른이라고 생각하지 말고 뭐든지 시작하다보면 어느새 내 것이 될 겁니다.”

새벽 2시, 신수진 기장은 화물기를 조종한다. 하늘에서 내려다본 야경은 눈을 뗄 수 없을 만큼 멋지다. “어둠속에서 온전히 혼자 비행기와 마주하면, 내가 ‘조종사구나’라는 생각이 들어요.” 12년간 하늘 위에 있었어도 그는 여전히 비행기 조종이 재밌다고 했다. 신 동문은 현재 주로 국내선과 중국ㆍ일본ㆍ동남아로 가는 소형기를 조종한다. 신 동문의 다음 목표는 앞으로 최대 555석짜리 초대형기인 A380를 조종하는 것이다.

그의 20대는 꿈을 찾아 끊임없이 방황하던 시기였다. 30대에는 하고 싶은 일을 찾아 비행기 조종이라는 일을 시작했다. 앞으로 펼쳐질 40대는 ‘비행기 조종’ 분야에서 자신을 꽃피울 것이다. 얼마 되지 않아, 곧 A380에서도 신 동문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을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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