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년간 부시 정권은 보수주의 정책을 고수해 안정적인 정치를 해왔었다. 그러나 이들 정권은 임기를 얼마 남겨 두지 않은 채 경제 위기에 직면하는 사태를 맞게 됐다. 미국이 당면한 사상초유의 경제 위기 속에서 지난 4일, 3억여 명의 미국인들은 변화를 선택했고, 전례 없는 흑인 대통령 버락 오바마의 당선을 시작으로, 현재 미국 사회에는 개혁과 진보의 물결이 일고 있다.

오바마는 대통령 선거 연설을 하면서 ▲보호무역주의 ▲대북정책 ▲환경 ▲의료보장 확대 ▲경기부양 대책 등 한반도와 관련된 이슈에 대해서 여러 번 언급했었기 때문에, 우리는 오바마 정부의 정책이 한국에 미칠 영향에 대해 살펴 볼 필요가 있다.

새롭게 위협받는 한ㆍ미 FTA
현재 가장 중요하게 떠오르고 있는 사안은 바로 ‘한ㆍ미 FTA’에 관한 사항이다. 오바마는 기존의 북미자유협정(NAFTA)을 ‘파괴적이며, 가장 큰 실수’라고 부를 만큼 자유무역에 대해 배타적이다. 물론 그는 스스로를 ‘성장 지향적이며 시장 지향적’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그는 현재의 자유무역 기조로 인해 경제전체가 균형을 잃었기 때문에 소수의 사람들이 혜택을 독식하는 체제가 되는 것이 불합리하다는 입장에 서 있는 편이다. 그는 또한 지난 미국 대선 토론회에서 “한국이 수십만 대의 차를 미국에 수출하면서도 미국 차의 수입은 수 천 대로 제한하는 협정은 공평한 협상이 아니다”라고 말하며 한ㆍ미자유무역협정(FTA)에 대한 문제점을 제기해왔다. 특히 미국의 최근 실업률이 전년도에 비해 6.3% 증가하는 등 미국의 경제 위기가 심화되는 상황이기 때문에, FTA에 관한 타결은 다시 원점으로 되돌아 갈 가능성이 높다. AFP(Agency France-Press) 통신에 따르면 오바마가 한ㆍ미 FTA에 분명한 반대 의사를 밝히면서 미국과 FTA를 고려중인 일본과 말레이시아, 태국 등 다른 아시아 국가들도 그의 입장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고 한다. 때문에 오바마가 선택한 한ㆍ미 FTA에 대한 입장은 비단 한ㆍ미 관계뿐만 아니라 동아시아 지역까지도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다.

긍정적으로 변화하는 북ㆍ미 관계
북ㆍ미 문제를 대하는 오바마의 태도는 어떨까. 북한과의 대화조차 금지했던 부시 행정부와는 달리 오바마 행정부는 핵 문제 해결과 관계의 회복을 위해 직접적인 대화의 시간을 갖겠다는 입장이다. “북한과 이란 등 이른바 ‘악의 축’ 국가 지도자들과 조건 없이 만나겠다”는 말로 주목받았던 오바마의 발언에 화답하는 듯,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나는 오바마 후보를 지지한다”고 말했다. 이와 같은 두 나라의 관계 변화로 인해 한국은 ‘미국은 통하고 남한은 봉쇄되는’ 이른바 ‘통미봉남(通美封南)’에 직면할 수도 있다. 물론 오바마는 비(非)핵화 원칙을 양보하는 것은 아니며 한국과의 협의 하에 북한과의 대화를 진행 하겠다는 입장을 드러내고 있기는 하다. 그러나 자칫하면 한국이 불편해하는 상황 속에서 북ㆍ미간의 대화가 열릴 수 있기 때문에 우리 역시 긴장의 끈을 놓지 말아야 한다.

미국의 ‘블랙파워’가 전 세계에 미치는 영향
그러나 오바마의 새로운 정책 방향이 우리에게 걱정만을 안겨다 주는 것은 아니다. 오바마 정부의 ‘석유의존도를 낮추고 대체 에너지 발전에 대한 투자를 확대 하겠다’는 환경 정책은 우리로 하여금 신 재생 에너지의 수요 증가를 기대해 볼 수 있게 만든다. 그는 2012년까지 미국에서 소비하는 전력의 10%를 신 재생 에너지로 충당하겠다는 뜻을 밝혔고 정부에서 사용하는 전력은 2020년까지 30%를 이 에너지로 충당하겠다고 발표했다. 이에 우리 정부는 태양광ㆍ풍력ㆍ연료전지 등 10여 가지가 넘는 에너지 기술 개발에 착수했고, 미국으로의 큰 수출을 기대하고 있다. 또한 ‘의료보장 확대를 위해 복제 약품에 대한 수입 확대를 추진하겠다’는 의료보장 확대 정책은 약품의 가격 인하가 선행돼야한다. 따라서 미국은 상대적으로 가격이 저렴한 복제 약품에 대한 수입을 확대할 것이고, 이는 국내 제약 산업의 긍정적인 발전을 도모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외에도 오바마 정부는 1994년 이후 최고치를 기록한 실업률을 낮추기 위해서 ‘경기부양대책’을 강구하고 있다. 그는 미국 경제 회복을 위해 대규모 사회간접자본 투자에 적극 나선다고 공언했기 때문에 이에 따른 우리 기업의 수출 기회 창출도 기대해 볼 만하다.
이같은 우려와 기대의 목소리에 대해 우병창(법학 전공) 교수는 “오바마의 공약들이 그의 임기 동안에 현실화 될지는 아무도 장담할 수 없다”면서 “국제사회에서 건강하게 생존하려면 상대방의 ‘진의’를 정확하게 읽고 현명하게 대처하는 능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또한 “무엇보다도 오바마의 한마디 한마디에 우리끼리 다투게 되는 우스꽝스러운 일이 일어나서는 안 될 것이다”라고 덧붙였다.

이제 우리는 미국식 보수주의에 따라 움직였던 지난 8년을 정리하면서 변화를 몰고 올 흑인 대통령인 오바마의 판단에 좀 더 주목해야 할 것이다. 또한 그가 가진 변화의 잠재력이 국제 사회에서 어떻게 영향력을 발휘할 것인지에 대해 많은 관심을 기울일 필요가 있다.

노경진 기자 smpnkj75@sm.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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