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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년 대, 격동의 세월을 함께 보낸 신문이었다.목은균 일반대학원장 인터뷰
이승현 기자  |  smplsh73@sm.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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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08.1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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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학교 100년사를 편찬하고 94년도 숙대신보 주간교수를 맡았던 목은균 일반대학원장을 만났다. “내가 숙대신보 기자들 사정을 잘 알지요”라며 미리 인터뷰 내용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한 그의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그는 94년 3월부터 7월까지 6개월이라는 짧은 기간동안 주간교수를 맡았지만 목 원장은 숙대신보를 향한 애정은 매우 큰 듯 했다. “90년대 초, 숙대신보는 전국 대학 신문 중에서 높은 평가를 받았어요. 교내 여론을 형성하고 이끄는 핵심 언론으로서 당시 총학생회의 영향력과 비등했어요.” 교내 여느 단체보다 주체적인 정체성과 독자성을 갖고 운영됐던 숙대신보에 기자들의 자부심도 대단했다고 한다.


“말 그대로 ‘학생들이 기다리는 신문’이었어요. 학생들이 신보를 읽고 문제점이 있으면 바로 투고하는 등, 신보사와 학생들의 교류가 많았어요.” 당시 숙대신보가 어떤 사안을 제시하면 학생들은 치열한 찬ㆍ반토론을 벌였고 이는 곧 토론문화를 형성하는 장으로 활용되곤 했다. 한편으로는 숙대신보가 당시 숙명인들과 남학생을 연결하는 매체이기도 했다. 그는 서로의 대학 신문을 교환해보고 이성친구의 학교에 대한 궁금증을 신문으로 해소하며 대학 간의 교류와 평가도 이뤄졌다고 전했다.


격동의 세월이라 일컫는 90년대 초, 80년대 민주화 운동의 여파는 대학가를 휩쓸었다. 그러한 시기를 숙대신보 기자들과 함께 보냈던 목 원장은 당시를 생생히 떠올릴 수 있었다. “민주화 운동과 함께 선명성투쟁, 폭력, 저항의 강도가 더욱 거세졌어요. 특히 우리 기자들도 의식화되어 민주투사의 사명감을 갖고 열정적으로 기사를 썼지요. 그러나 한편으로는 모든 기사를 하나의 관점에서 쓰다 보니 맹목적인 좌경화의 틀에 갇히는 한계를 지녔었죠.” 당시 대부분의 대학가는 정치와 사회문제에만 관심이 집중돼있는 상태였고 대동제와 같은 대학 축제는 위령제나 결의대회 등으로 변질되는 추세였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중립적인 시각을 갖고 대학문화를 이끌어야하는 대학 신문이 방향성을 잃은 것이었다. “신문이 너무 사회문제에 치우치다보니 학내 사안은 관심 밖이었어요. 다시 숙대신보가 대학 신문으로서의 역할을 하기 위해 기자들과 수많은 토론이 필요했습니다”라며 목 원장은 기자들과의 마찰도 많았노라고 회상했다.


극단적으로 사회비판적인 기사 때문에 기자들에게 화도 내봤다는 그는 “당시에는 사회적으로 제약이 많다보니 비판의 강도가 센 기사가 나오면 학교 자체에 영향을 미쳤습니다. 그래서 기사에 제약을 가할 수밖에 없었고 이 때문에 기자들과의 마찰을 빚곤 했어요. 결국 ‘발간중지’를 선언하는 사태가 일어나기도 했었죠”라고 말했다. 그러나 그는 함께 고생한 만큼 정도 많이 들었다며 기자들을 포함한 많은 학생들이 국가를 위해 고뇌하는 모습을 보면서 민주주의가 뿌리 내릴 수 있다는 희망을 봤다고 말했다. “내가 주간이었을 때의 편집장이 임기를 마치고 여군장교로 갔어요. 리더십을 갖고 있던 학생이었기 때문에 지금 군에서도 인정받고 있겠죠”라며 목 원장은 15여 년 전의 숙대신보 기자와의 이야기를 꺼내며 웃음 짓기도 했다.


숙명의 역사와 함께 한 숙대신보는 지난 2006년 방대한 양을 자랑하는 숙명 100년사 편찬에 큰 도움을 줬다고 한다. 당시 편찬위원장이었던 목 원장은 “100년사를 정리하면서 숙대신보를 통해 숙명 역사에서 빠진 부분을 보완할 수 있었습니다. 어떤 자료보다 숙명의 지나온 발자취를 담고 있어 편찬 작업에 많은 도움을 주었죠”라며 “학교 공문서는 교내 행사의 실시 여부만 언급하고 있는 반면 숙대신보는 상황이 자세하게 취재돼있었습니다”라고 말했다. 특히 학생들의 개별적인 활동 모습은 알 수 있는 방도가 없었는데, 예전 숙대신보가 학생들의 풍속을 집중 취재한 연재 기사나 사진 등을 통해 정보를 수집할 수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사실과 기사 내용이 다른 부분이 많아서 100년사 편찬에 혼란을 주기도 했다며 문제점을 꼬집었다. “숙대신보에 게재된 도서관 건축 규모, 장서 수 등이 실제와 달라 다른 자료들을 검토하고 내용을 수정해야만 했죠. ‘숙대신보’ 기사가 영원한 기록으로 남는 만큼 정확하고 철저한 취재와 제작과정이 필요합니다.” 이어 그는 기사 자료를 정리한 데이터가 없어 방대한 양의 신문을 일일이 검토해야 했다며, 기사 내용의 데이터베이스화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목 원장은 현재 인터넷 등 뉴미디어 매체 발달로 숙대신보에 대한 학우들의 애정이 예전같지 않다며 조언의 말도 아끼지 않았다. “학생들의 수요에 맞출 수 있는 기사를 쓰고 특히 교수와 학생의 이야기가 많이 다뤄 교내는 물론 대학 신문 본연의 임무인 진리 탐구 및 학문 수준의 제고를 잊어서는 안되죠”라며 “지난 날 학생기자들을 옆에서 지켜봤기 때문에 그들의 고충을 잘 압니다. 힘들겠지만 보다 심층적인 취재와 다양한 기사로 더욱 발전하는 숙대신보가 되길 바랍니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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