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이 약했던 한 소녀는 몸이 약해 앓아눕기 일쑤였고, 천식으로 조금만 뛰어도 숨이 찼다. 그러나 노래를 부르는 것을 너무나 좋아한 소녀는 주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성악을 배우기 시작했다. 노래에 대한 열정하나로 천식을 극복해 가면서 국내외 각종 콩쿠르에서 입상을 했고, 3시간의 공연도 거뜬히 소화해 내는 오페라 가수가 됐다. 그리고 그 실력을 인정받아 영국의 왕립음악원의 총책임자로 활동한다. 바로 그 소녀는 성악가 신재은(성악과 98졸) 동문이다. 신 동문의 이야기를 듣기 위해 아담하지만 많은 사람들로 활기가 넘치는 한 까페에서 그를 만났다.



노래가 좋아 시작한 성악

어려서부터 앓던 천식을 어떻게 극복했는지 기자가 묻자 신 동문은 “어렸을 때는 천식이 아주 심했어요. 그런데 성악을 할 때는 가슴을 열어 숨을 깊게 쉬는 호흡을 하다 보니 천식이 자연스럽게 치유됐어요. 어렸을 때 하도 앓아서 내성이 생겼는지 오히려 지금은 웬만한 감기도 잘 걸리지 않을 만큼 건강하답니다”(웃음)라고 화답했다.

성악을 시작하기 전, 신 동문은 피아노를 전공한 어머니의 영향으로 피아노를 배웠다. 그러나 피아노 보다는 노래를 하는 것이 더 좋았던 신 동문은 중학교 3학년때부터 성악을 시작했고, 성악과에 입학한 이후 오페라 분야에 관심을 갖게 됐다. “오페라는 연기, 춤, 성악 등이 다 갖춰져 있는 종합예술이에요. 단독 공연과는 달리 여러 사람들과 하나의 예술을 만들어 낸다는 점에서 매력을 느꼈답니다.” 오페라는 성악을 하는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기회가 되면 하고 싶은 분야이기 때문에 오페라의 무대에 설 수 있는 사람은 극히 제한돼 있었다. 이에 대해 신 동문은 “저는 오페라 무대에 서기 위해 공연도 많이 보고, 이에 대한 공부도 하면서 피나는 연습을 해야만 했죠.” 이러한 노력으로 신 동문은 실력을 인정받아 학교 내에서 열리는 오페라 공연과 협연에서 매번 주연을 맡으며 눈코 뜰 새 없는 학부 생활을 보냈다. 하지만 신 동문은 이에 만족하지 않고 오페라를 더 많이 배우고, 실력을 마음껏 발휘하기 위해 졸업 후 유학을 결심했다. 그는 수석으로 학부를 졸업 한 뒤 일주일 후 미국으로 가는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배움에 대한 끊임없는 갈증, 그리고 그 후 10년

존스 홉킨스 대학(The Johns Hopkins University)에서 유학생활을 시작한 신 동문은 “ 사실 2년 정도만 유학을 하고 한국으로 돌아오려고 했는데 그곳에 있을수록 배우고 싶은 욕심이 더 났어요. 그래서 기간을 연장한다는 것이 벌써 10년이 지났지 뭐에요”라며 환하게 웃는 신 동문에게서는 배움에 목말라 하는 끊임없이 열정을 느낄 수 있었다. 존스 홉킨스 대학을 졸업한 그는 메릴랜드 Opera Assistantship 프로그램에 발탁됐다. 그는 “오페라 전문학교라고 불리는 이 과정에서는 오페라에 필요한 연기, 드라마, 춤 등을 모두 전문적으로 배울 수 있어요. 그런데 공부는 하면 할수록 더 배우고 싶은 게 많았어요. 그래서 이 프로그램을 수료하면서 메릴랜드 대학에서 박사과정을 밟는 강행군을 하기도 했어요.”라고 말했다.

신 동문은 그가 외국 유학 생활을 오래하게 된 또 하나의 이유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그곳에서는 열심히 한 만큼 내 기량을 펼칠 기회가 주어져요. 그만큼 무대의 기회가 한국보다 더 공평하게 주어진다는 점이 계속 그곳에서 공부하고 싶게 한 원동력이었어요”라며 이러한 분위기에 힘입어 치열하게 공부하고 연습한 덕분에 수많은 무대에서 종횡무진으로 활약할 수 있는 기회를 거머쥘 수 있었다.

메릴랜드와 워싱턴D.C, 뉴욕 등 미국 동부지역을 중심으로 활동한 신 동문은 미국 현대 오페라 “Fatal Song”과 “Where Angel’s fear to tread” 등의 오페라 무대에서 주역을 맡아 공연을 했다. 그러나 그의 활동은 성악가로서 공연을 하는 것에만 그치지 않았다. 그 외에 대학에서 강의도 하고 뮤지컬 음악코치로 활동하기도 했다. 미국 워싱턴 지역 FOX방송국 산하에 있는 Drama Learning center에서 뮤지컬 음악 코치로서 활동한 그는 “2년 동안 예술에 재능 있는 아이들을 선발해 가르치는데 너무 즐겁게 활동 했어요.”라고 말했다. 이렇게 오페라 공연에만 한정되지 않고 음악의 여러 장르를 드나들며 그는 10여년의 유학생활을 마치고 작년 여름 귀국했다.

하지만 이렇게 신 동문의 화려한 활동 뒤에는 경제적인 어려움이 있었다. 그는 “예술을 하려면 돈이 굉장히 많이 들어요. 그런데 저희 집은 금전적으로 제 유학 생활을 모두 뒷바라지 할 만큼 부유하지는 않았어요”라며 “학비는 장학금으로 그 나머지는 제가 그곳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생활비와 레슨비를 벌었어요. 샌드위치 가게 아르바이트부터 시작해서 악기상의 매니저를 하기도 했고, 학교 내 인턴쉽 프로그램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기도 했어요”라고 말했다. 아무런 동문도 연고도 없는 외국에서 자신의 기량을 맘껏 펼쳤던 신 동문에게는 강인한 자립심이 자리잡고 있었다.

귀국 후, 또 다른 새로운 시작

귀국 후 얼마되지 않아 신 동문은 영국 왕립음악원으로부터 연락을 받게 된다. “미국에서 제 공연을 보고 인상깊게 봤다는 영국 왕립음악원의 관계자가 그곳의 총 책임자로 와 달라고 부탁했어요” 영국 왕립음악원은 현 엘리자베스 여왕이 이사장으로 있는 음악원으로 영국의 4대 사립음악원 중 최고봉으로 꼽히는 곳이다. 그곳에서 오디션을 통해 재능 있는 사람들을 선발한 신 동문은 “특히 아시아 투어 오디션은 한국 학생을 주 대상으로 하고 있지만 세계 각지에 있는 학생들이 이곳에 들어오기 위해 오디션을 보러올 만큼 이곳의 인기는 아주 좋아요. 이런 왕립음악원과 우리 학교와의 교류도 현재 추진하고 있는 중이랍니다”라고 말했다.

신 동문은 그의 어머니, 언니, 동생 모두 우리 학교를 졸업했다. 온 가족이 숙명인이다 보니 그만큼 학교에 대한 애정도 남달랐던 그는 귀국 후 강사로서 학교에 돌아 왔다. 앞으로 오페라 공연과 후배들을 양성하는데 집중하고 싶다는 신 학우는 숙명인들에게 “10년여 간 미국에서 학업과 오페라 공연 그리고 뮤지컬 영역 등의 분야에 도전하면서 느낀거에요. 무엇을 하기도 전에 ‘아직 준비가 덜됐어’라고 망설이지 마세요. 자신의 목표를 이룰 수 있다는 자기 자신을 믿고 목표를 결심하는 순간 이미 목표는 반절을 이룬거나 마찬가지에요”라고 당부했다.

클래식에 대해 관객들이 갖는 어려움을 해소하기 위해 해설이 있는 오페라 공연을 기획할 것이라는 포부를 밝힌 신 동문. 앞으로 그가 성악가로서 교육자로서 어떤 활동을 해 나갈지 기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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