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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내일도 푸르른 역사를 위하여
이승현 기자  |  smplsh73@sm.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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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08.0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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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복궁역에서 나와 구불구불한 골목길을 누비면서 낮은 건물들과 드문드문 보이는 한옥집이 고즈넉하다. 한참을 헤매다 단정한 단발머리에 강한 인상을 지닌 박혜숙(사학 83졸) 동문을 만났다. 작지 않은 키에 성큼성큼 걷는 박 동문을 따라가니 아담하지만 한옥의 옛 정취가 그대로 묻어있는 대문이 보였다. 대문 바로 옆에는 ‘푸른역사’라고 써있는 문패가 걸려있었다.


대중과 역사의 만남을 주선하다


푸른역사는 1997년 ‘푸른숲’의 자회사로 출발한 역사전문 출판사다. “당시 출판사를 시작할 때는 80년대 민주화 운동으로 사회주의가 몰락한 뒤 사회과학 서적이 침체기를 달리고 있었을 시기였죠. 이념과 함께 사람들의 정서도 변하면서 출판시장의 빈틈을 ‘역사’가 메울 수 있을 것이라고 판단했습니다.” 이렇게 시작한 푸른역사가 출판계에서 높이 평가받는 가장 큰 이유는 ‘역사의 대중화’를 실현했기 때문이다. 푸른역사가 나오기 전에는 역사서라 하면 학술논문에 준하는 전문학자들의 책이 대부분이었고, 학문적인 훈련을 받은 이들조차 이해하기 어려운 역사서가 태반이었다. “학자들끼리 성과를 공유하는 학술지가 아닌 일반인도 손쉽게 볼 수 있는 책을 내고 싶었습니다. 기존 역사서의 내용과 구성을 전면적으로 일반 대중들의 눈높이에 맞게끔 재구성했죠.” 이러한 결과로『미쳐야 미친다』『조선의 뒷골목 풍경』『선비답게 산다는 것』등 그가 새롭게 개척한 컨셉의 역사서는 대중들로부터 인정받아 성공을 거뒀다.


그렇다고 푸른역사가 학술적 성과들을 도외시했던 것은 아니다. 출판 시장에서 학술서의 비중은 극히 적은 편이라 거의 수익을 낼 수 없다. 그럼에도 박 동문은 “역사 대중서는 재미도 있어야겠지만 학술적 깊이가 뒷받침이 되야합니다”라며 대중서에서 벌어들이는 수익을 학술서에 투자한다고 말했다. 푸른역사에서 출판하는 책 중 학술서가 반 이상이 차지하는 것도 대중화된 역사 전문 서적일지라도 학술적 기반이 다져져야 한다는 박 동문의 원칙 때문이다.


이와 같이 역사를 평생 업으로 여기는 그의 이야기를 들으며 문득 그에게 있어 역사란 어떤 의미일까. “우리에겐 미래가 불안하고 전망도 불투명한 일이 많죠. 역사를 돌이켜보면 현상적으로 비슷한 유형이 많습니다. 무슨 일이 있었을 때 역사적으로 유사한 사례를 찾아보면서 앞으로의 해답을 찾는 거죠.” 이러한 역할은 역사의 기본적인 기능이라 한다. “이 외에도 역사 자체에서 즐길 수 있는 즐거움, 다양한 교훈 등을 찾는 것도 하나의 매력입니다. 그리고 이 모든 매력을 한데 모아 푸른역사에서 책으로 출판하는 것이죠”라며 자신의 일에 대해 자부심을 드러냈다.



역사가 좋아 시작한 출판업계의 늦깎이


박 동문이 처음부터 출판계에 발을 들였던 것은 아니다. “우리 학교 석사과정을 마치고 강의도 나가봤지만 나에게 책상물림은 맞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서른이라는 늦은 나이였지만 평소 하고 싶었던 출판업계에 뛰어들었죠.” 그가 처음 입사한 곳은 기존 정보를 가공해 판매하는 출판 업체였다. 잡일을 담당하는 수습에서 모든 일을 총괄하는 이사까지 그 곳에서 6년의 시간을 보냈다. 그러나 그는 한 회사의 관리직을 일로서는 할 수 있었지만 자신에게 ‘즐거웠던 일’은 아니었기에 다시 자신의 일을 고민하기 시작했다. “평생 출판을 한다면 내가 재밌어할 주제를 정해야했고, 그 결과 ‘역사’를 선택했죠.” 역사야 말로 그가 지금껏 쌓아온 학문과 지식을 바탕으로 애정이 깃든 분야였다. 서른여섯의 그에게 더 이상 지체할 시간은 없었다. “결정적인 계기는 프랑크푸르트 도서전을 다녀오면서 ‘이제는 직접 내가 책을 만들 때’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출판인으로서 그곳에 다시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죠.”


지금껏 180여권의 책을 만들면서 박 동문은 매번 출판의 매력을 느낀다고 한다. “책 한 권을 낼 때마다 무형의 상태에서 대략적인 그림을 그립니다. 어떤 분야의 주제를 가지고 어떤 방식으로 낼 것인지……. 이런 머리 속의 상상이 눈 앞에 이미지로 만들어 졌을 때가 가장 뿌듯합니다.” 이처럼 그는 편집자 이전 한 명의 독자로서 마음에 드는 이미지가 그려졌을 때는 열과 성의를 다한다고 한다.


박 동문과 역사와의 인연은 중학생 시절부터 시작된다. 그는 “중학교 때 역사선생님의 강의를 들으며 역사이야기에 매력을 느꼈습니다. 우리 학교 사학과를 들어간 것도 그 때 느꼈던 매력 때문이죠. 특히 고등학생 때 이만열 (우리 학교 명예교수)교수님의 칼럼을 읽으며 이 분 밑에서 공부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라며 어린 시절부터 이어져온 역사와의 인연을 말했다. 당시 우리 학교 사학과에서 강의를 하던 이만열 교수의 강의는 박 동문에게 매우 강한 인상을 남겼다고 한다. “‘역사를 통해 무엇을 할 것인가’에 대한 이 교수님의 강렬했던 역사의식이 생각납니다. 뿐만 아니라 장신구나 화장을 한 학생들을 혼내시고 이를 금지했던 교수님의 엄격했던 모습도 떠오릅니다”라며 지금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라고 그 때를 회상했다. 역사는 또 한 번 이 교수와의 인연을 맺어줬다. 작년, 푸른역사에서 출간한 이 교수의 책이 독립기념관 학술상을 받은 것이다.


‘뚝심’하나면 못할 것 없다


박 동문은 학창시절 조용하게 공부만 하던 학생이었지만, 직장을 다니며 자신을 많이 바꿨다고 한다. “뚜렷한 목표를 설정하니 다음에는 ‘편집광’이라 불릴 정도로 일에 몰두할 힘이 났죠”라며 이러한 그의 성향은 많은 숙명인들이 갖추고 있는 대표적인 자질이기도 했다. 그는 출판계에서 우리 학교 출신은 많이 접하진 못했지만 숙명인을 ‘자신의 몫은 확실하게 끝내는 사람’이라고 정의했다. 이어 “숙명인은 ‘뛰어남’보다는 ‘필요함’에 가까운 것 같아요. 능력과 성실을 더해 스스로를 없으면 안될 존재로 만듭니다”라고 말했다. 때문에 이에 리더십까지 갖춘다면 ‘금상첨화’라는 것이 그의 의견이다.


늦게 시작한 일이니만큼 어렵지 않았냐는 물음에 박 동문은 ‘드디어 출판 인생이 시작됐구나’라고 생각하니 모든 일이 값지게 느껴졌다고 답했다. 박 동문이 서른 넘어 입사한 회사에서 3개월간 수습기간을 거쳤는데, 맨 위의 팀장이 자기보다 한참 어린 후배였다. “그 밑에서 온갖 궂은 일을 해야만 했고, 수습이기 때문에 스크랩을 하는 것이 일의 전부였죠”라며 이러한 기본적인 밑바닥 훈련을 거쳤기에 그 다음 단계로 나갈 수 있다고 말했다.


박 동문이 18년간 출판업계에 종사할 수 있었던 가장 큰 요인은 그의 ‘뚝심’ 때문이다. “제 생각엔 어느 분야에 도전을 하든지 10년 정도의 경험이 있어야 이에 대해 발언할 권리가 생기는 것 같습니다.” 그는 신입사원을 뽑을 때 한 군데에서 얼마나 오래 있었는가를 유심히 본다고 한다. “요즘 세상에는 조그만 일에도 나갔다 들어갔다를 반복하지만 그런 사람의 대부분이 내면의 문제를 그 공간에서 해결하지 못해 이리저리 옮기는 것입니다”라며 “어쨌든 자신이 관심 가진 분야에서 승리감을 맛볼 때까지는 지속적으로 해봐야죠”라고 말했다. 박 동문의 ‘뚝심’이 그대로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박 동문은 앞으로도 푸른역사의 이름에 걸맞게 역사전문출판을 이어갈 예정이다. 그는 앞으로도 푸른역사가 ‘역사서의 대중화’를 꾀한 선발 주자인 만큼 새로운 주제 및 필자를 개발하는데 주력을 다할 것이라며 끊임없는 도전 의식을 내비쳤다.


인터뷰를 마무리하는데 백승종 공동대표가 한마디 거둔다. “박 대표에게 두 가지 장점이 있어요. ‘창의력’과 ‘비판력’이죠. 대중이 역사서를 인식할 수 있도록 창의력을 무궁무진하게 발휘하며, 한 번 주어진 일에는 무한한 비판정신을 발휘해 완벽한 작품으로 만들죠.” 이 것이야말로 대중들이 ‘푸른역사’를 통해 푸른역사를 접할 수 있었던 박 동문의 비결이었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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