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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로 성공한 '유난희' 아름다운 독종쇼호스트 유난희(가정관리 88졸) 동문
강미경 기자  |  smpkmk73@sm.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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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08.0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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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지지 않는 접시를 깨트린 여자. 가죽 코트에 물을 부어버린 여자. 보석에 자를 들이댄 여자. 홈쇼핑 역사상 전례가 없던 일을 만들어 스타가 된 여자가 있다. 바로 쇼호스트 유난희(가정관리 88졸) 동문이다. 쇼호스트 제1기인 유 동문은 국내 최초 억대연봉 쇼호스트, 국내 최초 명품 전문 쇼호스트 등 ‘국내 최초’라는 타이틀을 휩쓸며 쇼호스트계에 전설로 굳어가고 있다.


“오로지 방송, 방송...”


이런 유 동문이 가정관리(지금의 가족자원경영)를 전공했다는 점은 쉽사리 이해하기 힘들다. 대부분의 여학생들은 대입보다는 취업을 선택했고, 대학은 ‘시집 잘 가려고’ 가는 풍토가 만연했다는 1980년대. “아버지께서 시집 잘 가는 가정교사 되라면서 보내셨지만, 난 방송이 하고 싶었어요.” 교직이수 자격을 얻은 유 동문은 과감히 교직을 포기하고 복수전공으로 영문학을 선택했다. 오로지 방송국 시험을 준비하기 위해서였다. “나에게 학교는 수업만 듣는 곳이었어요. 동아리 활동도 안 했었죠.” 취업 경쟁이 치열하지 않았던 그 시절에는 지금처럼 학생들의 자질과 역량을 키워주는 학교가 아니라 학문을 위한 학교였다고 한다. “금희랑 희경(불문 88졸ㆍ배우)이랑 만나면 가끔 웃는 소리로 ‘학교가 우리한테 해준 것이 뭐 있나?’라는 얘기를 하기도 하죠. 그만큼 우리 때는 소속감도 없었고, 애교심도 적었죠.”


적성에 맞지 않는 전공이었지만, 그에게도 기억에 남는 교수가 있다. 바로 계선자(가정경제 전공) 교수다. “가정경제, 소비자 경제 과목을 가르치셨는데 너무 재미있더라고요. 그래서 교수님 수업만 쫓아다니면서 들었어요.” 당시에 배웠던 것들 중에서도 소비자 구매행동 등은 지금의 쇼호스트로서의 자질을 키우는 발판이 됐다고 한다. “내가 경제를 좋아하니까, 교수님께서는 제자로 키우고 싶으셨는지 대학원 진학을 권하셨죠. 내가 교수님을 좋아했지만, 방송이 더 좋은걸 어떡해~(웃음)” 사회생활의 매력에 푹 빠진 유 동문은 계선자 교수와 ‘사회생활 3년만 해보고, 적성에 맞지 않으면 학교로 돌아오겠다’는 약속을 지킬 수 없었다.

“포기하기에는 너무 억울하잖아요”


유 동문은 오로지 꿈을 이루기 위해 아나운서, 성우, MC 등 방송사 시험만 22번을 치뤄냈다. “어느새 31살이 됐더라고. 나이로는 끝났다 싶었죠. 더군다나 기혼이었거든요.” 그러던 어느 날, 우연히 신문의 채용 란에서 쇼호스트를 뽑는다는 공고가 난 것을 보게 됐다. ‘방송에서 상품을 소개하는 전문 진행자, 결혼여부ㆍ나이 무관’. 고민할 필요조차 없었다. 하필이면 그날은 원서접수 마감 날이었고, 철수하는 접수데스크를 붙잡고 서류를 작성하기 시작했단다. 이력서와 자기소개서만 수 십 번을 써봤던 그였기에, 일필휘지(一筆揮之)로 원서를 써내려갔다. 우여곡절을 겪고, 4차전형까지 통과했지만 쇼호스트가 되는 길은 척박했다. 외국인으로부터의 3개월의 연수기간을 통과해야 했고, 쇼호스트 1기였기에 따라하는 것 없이 거의 창작에 의존해야 해야만 했다.


그렇게 시작한 방송. 그러나 또 다른 산이 기다리고 있었다. 바로 육아였다. 지금은 초등학교 6학년이 되어버린 아들 쌍둥이의 엄마인 유 동문. “아이도 없는데 제대로 일 안하는 사람들 보면 때려주고 싶을 정도예요” 시어머니와 친정어머니는 일보다는 가정이 먼저였기에, ‘아이보기 힘들면, 일을 그만둬라’고 했었단다. “오기가 생겨서 이 악물고 아이를 키웠어요. 남산만 하게 배가 불러도 방송을 했어요. 내가 좀 독해요.(웃음)” 아이를 낳은 뒤에도 시어머니께서는 아들이 아이 때문에 직장생활에 지장이 있을까봐 본가에서 출퇴근을 하라고까지 하셨다고. “지나고 나니까 힘들었던 만큼 나 자신에 대한 성취감도 크고 믿음과 확신도 커요. 그 어떤 일을 했던 것보다 나 자신에 대한 애정도가 커졌죠. 어느 누구 앞에서나 떳떳하구요.” 이렇게 일과 가정, 두 성공을 거둔 유 동문의 성공 스토리는 지난 2005년 『아름다운 독종이 프로로 성공한다』는 에세이집으로 발간됐다. 유 동문은 자기 스스로에게 대해서는 인내력 있고, 강하고 모질게. 그렇게 자기 자신을 참아내고 이겨내는 건 정말 ‘아름답다’고 말했다. “성공하는 사람들 보면, ‘정말 끝까지 가보자!’ 하잖아요. 성실하게 자기관리 하면서 노력하는 그 모습이 아름다운 겁니다.”


“누구나 죽을 때는 후회를 하죠”

   
 
   
 

유 동문은 20대에 많은 경험과 실패를 해본 사람은 30대, 40대가 돼서는 실패하지 않는 반면, 20대에 실패할까봐 두려워하는 사람들이 뒤늦게 나이 들어서 실패하는 것이라고 했다. “20대에는 실수할까봐 두려워하지 마세요. 실패 해본사람하고, 안 해본 사람하고는 삶이 달라져요.” 20대에만 스물 두 번의 실패를 딛고 30대에 쇼호스트계의 정상에 오른 유 동문이라서 이런 이야기를 해주는 것일까. “내가 만약 한 번도 실패하지 않았다면, 지금의 ‘유난희’는 없을 거예요.”


그리고는 삶을 살아가는 데 있어 성실 할 것과 무슨 일이 있어도 포기하지 말 것, 그리고 반드시 될 것이라는 긍정적인 생각을 가질 것을 조언했다. “포기하지 않는 건 가능성을 열어놓는 거예요. 나이가 들어 방송을 포기했다면, 지금쯤 평범한 주부가 됐겠죠. 지금이야 억대연봉을 받지만, 난 31살에 쇼호스트가 됐어요. 18년만 고생하면 성공하는데, 17년째에 포기해버렸다고 생각해봐요. ‘알면 참지~모르니까 못 참아!’라고들 하는데, 모르니까 참아내야 해요.”


그렇지만 아직도 도전에 대한 실패가 두렵다면? 유 동문은 하루~일주일 단위의 계획을 세우고 늘 체크하라고 조언한다. 매일 두세 번씩만 수첩을 열어봐도 일정이 보이기 때문에 계획을 세우게 되고, 계획된 삶을 살 수 있을 것이라는 것이다. “사람은 죽을 때 한 것을 후회하기보다 안한 걸 후회하고 죽는다잖아요. 내가 그때 왜 그걸 안했을까 하면서. 그러니까 안 해보는 거 없도록 많이 도전해보고, 경험해 보는 것이 좋겠죠. 후회하면서 죽어가기엔 인생이 너무 아깝잖아요. 난 정말 20대가 부러워.”

도전, 인내, 끈기, 실패, 좌절, 성공……. 어느 하나가 빠져도 유 동문을 제대로 설명하기 힘들 것 같다. 갈수록 치열해지는 경쟁사회에서 실패하기는 쉬워도 도전하기는 어렵다. ‘도전 없는 실패는 무의미하다’는 유난희 동문의 말을 기억하며, 강하고 모질게 ‘아름다운 20대’를 보내보는 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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