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일어났더니 드물게 아버지의 문자가 와 있었다. “게으름은 천천히 움직이므로 가난이 쉽게 따라잡는다. -벤자민 프랭클린” 아버지에게 핸드폰 자판은 너무 조그맣고 복잡하다. 쓰는데 5분은 걸렸을 아버지의 문자는 그 자체로 아버지의 성실함을 대변하고 있었다.

대학에 들어와서 일곱 번의 방학을 거쳤다. 나는 대한민국 이십대 지성인으로 방학 계획도 항상 현실적이었다. 살을 뺀다가 아니라 5kg감량이 목표였고, 놀 땐 육하원칙에 따라 준비했으며, 기말고사 기간 전부턴 청강까지 해서 가격대비 효율을 비교해 학원을 등록했다. 6월과 12월의 나는 언제나 기세가 등등했다. 이 방학이 끝나면 나는 대단한 사람이 된다.

그러나 나는 일곱 번의 방학을 거치고도 대단한 사람이 되지 못한 원인을 찾는다. 여름이라 더워 죽을 지경인데도 밥은 너무 맛있고 운동을 하면 근육통에 괴롭다. 지난 밤, 술 마시고 들어와 4시에 자러 간 사람에게 오전 10시는 새벽이나 다름없다. 나의 소중한 침대는 너무 푹신하며, 숙제도 안한 채 학원에 가 봤자 30%는 못 알아듣는 수업이 될 게 뻔하다. 그렇다면 뒹굴기만 한 이 방학동안 차곡차곡 쌓여있어야 할 용돈은 왜 천 원짜리 한 장 남아 있지 않은 것일까?

그러니 나는 예쁜 후배님들이 방학을 어떻게 보내야 하느냐고 물어도 답을 모른다. 사실 그럴 듯한 충고나 철저한 계획이 바로 성공한 방학으로 이어지는 것도 아니다. 침대와의 싸움, 먹을 것과의 싸움. 사실은 내가 사는 이유일지도 모를 이들과의 싸움에서 7전7패를 당하며 승리하는 방법을 하나도 배우지 못한 탓이다.

개강이다. 방학만은 배움을 놓는 때라고 위안을 삼았다면 이제는 나를 삼키러 가난이 가까워진 만큼 열심히 도망칠 요량이다. 혹시 또 아는가, 달리다 가속이 붙어 다음 방학에는 결승골을 통과해 버릴지. ‘대학생 성공한 방학 보내기’ 등의 제목으로 책이라도 써서 20대 베스트셀러 작가 대열에 들어가게 될지 말이다.

이경진 (경영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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