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학교의 변천사를 가장 가까이에서 지켜봐 온 박영혜(불어불문학 전공), 임명애(성악 전공), 김갑년(의사소통센터) 교수를 만나 우리 학교의 과거에 대해 들어봤다.


우리 학교에 30년 이상 재직하고 있는 박영혜 교수가 처음 우리 학교에 왔을 때, 본관은 현재의 모습처럼 석조 건물이 아니라 목조 건물이었다. 박 교수는 “바닥도 고등학교처럼 나무로 된 마룻바닥이었다.”며 “학생들이 구두를 신고 오면 삐걱거리는 소리 때문에 누가 오고 가는지를 다 알 수 있었다.”고 말했다. 또한 학교 건물에 대해서 임명애 교수는 2001년 음대 건물이 설립되기 전까지 지금의 학생회관이 음대 건물로 쓰였다고 말했다. 임 교수는 “방음시설이 없었던 탓에 노랫소리가 건물 밖으로 새어나갔었다.”며 당시를 회상했다.


시간이 흐름에 따라 학교가 변했듯, 예전의 학생들과 지금 학생들의 모습도 다르다. 전국 대학가에 학생운동이 활발하던 80년대에 우리 학교 학생들 역시 학생운동에 많이 참여했다. 대학마다 이념 써클들이 결성되는 분위기 속에서, 시위에 참여한 우리 학교 학생들 중 일부는 구속되기도 했다. 박영혜 교수는 “다른 교수님들과 함께 구속된 학생들 면회를 갔던 기억이 난다.”고 말했다.


어지러운 시대상황 속에서 열린 학교 축제는 지쳐있던 학생들에게 즐거움과 낭만을 줬다. 임 교수는 “지금은 학교에서 주점을 하지만 당시에는 몸에 딱 붙는 드레스를 입고 바(BAR)를 했었다.”며 인기가 높았다고 말했다. 또 지금은 남학생들이 청바지 등 편한 복장으로 가볍게 우리 학교 축제에 놀러오지만 예전에는 초대를 받으면 양복을 차려입고 오는 게 일종의 관례였다고 한다.


김갑년 교수는 우리 학교에 온지 2년 밖에 되지 않았지만 그 2년 사이에 내적으로, 외적으로 우리 학교의 이미지가 많이 바뀌었다고 했다. ‘숙명여대’하면 조용하고 수동적인 이미지가 강했고 과거에는 실제로도 그랬으나, 최근에는 기업 인사담당자들이 입을 모아 칭찬을 할 정도로 활동적이고 적극적으로 변했다고 한다. 박 교수와 임 교수 역시 입을 모아 앞으로 더 발전하기 위해서는 자신감을 가지고 도전적 정신으로 자기준비를 해야 한다며 ‘과거를 밑바탕으로 미래를 향해 나아가라’고 조언했다.


김현주 기자 smpkhj75@sm.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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