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송자: 지하연(인문 05)
가히 살인적인 꽃샘추위의 기세가 한 풀 꺾인 듯하다. 겨우내 따뜻하다가 춘삼월에 와서야 찬바람과 눈까지 뿌리는 날씨가 새 학기, 특히 이제 막 대학에 입학한 신입생들의 설렘까지 앗아갈까 내심 걱정이 됐는데 다음주면 완연한 봄 날씨가 된다고 하니 맘껏 새 학기, 새 봄을 만끽하리라. 이른 봄 아침, 뜨뜻한 이부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하고 ‘이일 저일 보살필 일로 마음이 갈라질 때’ 작은 새와 함께 휘파람 부는 희망하는 사람이 됐으면……. ‘사알랑 사알랑’ 불어오는 봄바람 맞는, 이제 드디어 ‘봄’입니다.


이른 봄 아침
정지용


귀에 선 새소리가 새어 들어와
참한 은 시계로 자근자근 얻어맞은 듯,
마음이 이 일 저 일 보살필 일로 갈라져,
수은 방울처럼 동글동글 나동그라져,
춥기는 하고 진정 일어나기 싫어라.

쥐나 한 마리 훔켜잡을 듯이
미닫이를 살포시 열고 보노니
사루마다 바람으론 오호! 추워라.

마른 새삼 넝쿨 사이사이로
빨간 산새 새끼가 물레 북 드나들 듯.

새 새끼와도 언어 수작을 능히 할까 싶어라.
날카롭고도 보드라운 마음씨가 파다거리어.
새 새끼와 내가 하는 에스페란토는 휘파람이라.
새 새끼야, 한종일 날아가지 말고 울어나 다오,
오늘 아침에는 나이 어린 코끼리처럼 외로워라.

산봉오리―저쪽으로 돌린 프로필-
패랭이 꽃빛으로 볼그레하다,
씩 씩 뽑아 올라간, 밋밋하게
깎아 세운 대리석 기둥인 듯,
간덩이 같은 해가 이글거리는
아침 하늘을 일심으로 떠받치고 섰다,
봄바람이 허리띠처럼 휘이 감돌아서서
사알랑 사알랑 날아오노니,
새 새끼도 포르르 포르르 불려 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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