혈액 나눔, 그 따듯한 현장에서

사람에게는 따뜻한 피가 흐른다. 따뜻한 피, 혈액을 필요로 하는 사람과 함께 나눈다면 그보다 더 따뜻한 마음을 환자에게 전할 수 있을 것이다. 본지 사회부에서는 사람연대 박순영 혈액나눔팀장의 도움으로 서울 A병원의 박모 환자에게 혈소판 헌혈을 할 기회를 가졌다. 기자의 체험을 통해 여러분도 용기 내어 헌혈에 참여해 보는 것은 어떨까.

2월 23일 금요일 4시. 신촌 연대 앞 헌혈의 집에는 예상외로 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혈소판 헌혈에 앞서 헌혈 가능여부를 검사하기 위해 찾은 헌혈의 집은 넓고 쾌적해 깔끔한 인상이었다. 신상명세와 몇 가지 기본적인 질문이 적힌 헌혈기록카드를 작성하고 10분쯤 기다리자 간호사가 이름을 호명한다. 문진실로 들어선 필자를 보자마자 대한적십자사 김은양 간호사는 “검사 결과가 안 좋으면 헌혈을 못할 수도 있다.”며 고개를 갸웃거린다. 헌혈기록카드에 적힌 사항을 다시 한 번 구두로 꼼꼼히 확인한 그는 “얼굴에 핏기가 없다.”며 기자의 눈꺼풀을 내려 들여다봤다. ‘혹시 부적격 판정을 받는 것은 아닐까?’ 불안한 마음도 잠시, 혈액비중검사를 위해 양 팔을 걷어 부치자 간호사는 혈관을 확인하고는 “보기보다 좋다.”며 웃는다. 검사 결과 혈액비중 1.052 이상으로 적격 판정을 받았다. 한편 동행한 후배 기자는 체중 미달(여자 45kg, 남자 50kg 이하)로 인해 헌혈 불가능 판정을 받았다.


2월 28일 수요일 4시 10분. 이날 역시 헌혈의 집은 가득 차있었다. 일고여덟 개의 헌혈 침대는 모두 메워져 있었고 20대 초반으로 보이는 10여 명의 사람들이 대기중이었다. 지난번과 마찬가지로 헌혈기록카드를 작성한지 10분 만에 문진실로 들어갈 수 있었다. 간호사는 헌혈금지약물 안내문을 보여주며 몇 가지 주의사항을 거듭 강조했다. 헌혈자의 혈액은 수혈 받는 환자의 생명과 직결되므로 철저한 사전 검사가 이뤄지고 있었다.


4시 35분. “화장실은 다녀오셨나요? 한 번 시작된 헌혈은 중간에 멈추면 아무 소용이 없어지니 조심해야 해요. 헌혈할 때는 몸을 움직일 수 없으니 어서 화장실에 갔다오세요.” 간호사의 지시사항에 따른 후 긴장한 마음으로 헌혈 침대에 누웠다. 예상 헌혈 소요 시간은 75분. 따끔한 주사바늘의 느낌이 들자 이내 투명한 관을 통해 혈액이 빠져나가는 것이 보인다. 이때 소독에 사용되는 면봉, 주사바늘, 채집된 혈액을 보관하는 혈액팩 등 모든 채혈도구는 일회용품으로 개별 포장돼 있다.


필자와 비슷한 시간, 옆자리에 누운 류창표 씨는 한 달에 한 번 이상 이곳에 들러 정기적으로 헌혈을 하고 있다. 수차례 헌혈을 한 그는 “대단하다.”는 반응에 “누군가에게 도움을 준다는 생각보다는 그냥 누워있다 가는 것 같아 쑥스럽다.”고 겸손히 대답했다.


4시 40분. 갑자기 헌혈 진행 상황을 보여주는 기계에서 경고음이 울리며 예정보다 15분 늘어난 100분이 소요될 것임을 알렸다. 혈소판 헌혈은 전혈에 비해 주먹운동에 신경 쓰지 않으면 채혈 시간이 늘어나므로 주의해야 한다. 헌혈자는 장시간 채혈이 진행되면 그만큼 신체적인 부담을 느낄 가능성이 높다. ‘아차!’ 싶었던 필자는 주먹에 힘을 줘 쥐었다 폈다를 열심히 반복했다.


4시 45분. 전체 헌혈의 약 9%가 진행됐다. 혈관이 수축과 팽창을 반복해 주사바늘을 꽂은 오른팔에서 떨림이 있었고 약간의 냉기도 느껴졌다. 채집된 혈액 중 혈장과 혈소판은 따로 분리되고, 남은 혈액이 몸에 들어올 때 응고되는 것을 막기 위해 생리 식염수를 함께 투여한다. 이때 혈관이 차가운 온도를 감지해 순간적으로 수축하는 것이다. 팔의 온도가 지나치게 내려가는 것을 막기 위해 찜팩을 팔에 둘러 따뜻한 온도를 유지했다.


5시. 약간의 입술 떨림이 있었지만 옆에 준비된 음료수와 초코렛, 과자 등을 먹으며 당분을 보충했다. 주먹운동에도 적응이 돼 앞에 놓인 모니터를 통해 방송 프로그램을 여유롭게 시청할 수 있었다. 이곳에서는 각 헌혈 침대마다 구비된 모니터와 이어폰을 통해 방송을 보고 들으며 리모컨으로 원하는 채널을 선택할 수 있다. 헌혈은 약 35% 진행된 상황이었고 주먹운동에 신경써서인지 남은 시간이 생각보다 줄어들어 있었다.

 
5시 30분. 이제 남은 시간은 17분, 약 75%가 진행됐다. 기계의 혈액팩는 노란색을 띄는 혈소판이 제법 많이 차있었다. 기계는 바쁘게 돌아가며 피를 분류했고, 혈소판은 기계 속 별도의 공간으로 분류돼 들어갔다. 같은 시간, 류창표씨는 헌혈이 비교적 빨리 끝났다. 헌혈 소요 시간은 사람마다 차이가 있는데, 대체로 남성일 경우 시간이 짧은 편이다. 헌혈을 마친 류창표 씨는 “내 지정 환자가 완치됐다는 소식을 들으면 뿌듯하다.”는 말을 남기고 또 한달 뒤를 기약했다.


5시 50분. 약 80분간의 헌혈이 모두 끝났다. 지혈을 위해 반창고를 붙이고 엄지손가락으로 혈관을 지그시 누른 채 침대에 누워있자 헌혈증서와 함께 문화상품권, 과자 등이 지급됐다. 필자에게서 채집된 혈소판은 혈장과 함께 적정 온도를 유지할 수 있는 상자에 보관됐고, 이것은 5일 이내로 환자에게 수혈된다.


생각난 김에 들렀다는 연세대학교 조근주(경제 06) 씨는 학교 가까이에 헌혈의 집이 있어 친구들과 함께 짬을 내어 가끔 온다고 한다. 그는 “헌혈을 하는 사람이 풍족하지 않아 길거리에서 억지스럽게 헌혈자를 구해야 하는 현실이 안타깝다.”며 “헌혈은 대학생이라면 꼭 한 번은 해야 하는 경험.”이라고 말했다.

고등학교 졸업 후 이날 헌혈을 처음 해본 필자에게는 새로운 다짐이 하나 생겼다. 바로 헌혈증서 모으기다. 매번 날짜를 챙기지는 못할지라도 꾸준히 헌혈을 해서 헌혈증서를 모아보고 싶다는 욕심이 생겼다. 물론 모인 헌혈증서는 필요로 하는 환자에게 전할 생각이다.


필자의 경우 지정헌혈을 했지만, 반드시 환자를 지정하지 않아도 헌혈은 가능하다. 이밖에도 헌혈에 대한 자세한 정보를 알고 싶다면 사람연대(www.peoplenet.or.kr), 붉은천사단(www.100479.org), 한곳을바라보는우리(http://cafe.daum.net/hanbawo)와 같은 관련 단체에 문의하면 된다.


열정과 패기가 넘치는 우리의 젊은 오늘을 혈액질환자와 함께 나눠보는 것은 어떨까. 사람연대 박순영 혈액나눔팀장은 “환자가 직접 피를 구해야 하는 극한 상황이 오지 않도록 원활한 혈액공급이 이뤄져야 한다.”며 헌혈 참여가 활발해지기를 바란다는 뜻을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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