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여년 동안 유지됐던 우리나라의 호적제도 ‘호주제’가 2005년 2월, 폐지 판결을 받고 역사의 뒤안길로 쓸쓸히 퇴장했다. 그리고 그 후, 3년만인 2008년 1월 1일부터 새 호적제도인 가족관계등록법이 시행됐다. 과거 호주제와 비교해 ‘가족관계등록법’의 내용이 어떻게 바뀌었는지 알아보고 새로 바뀐 법이 우리 사회에 어떤 영향을 가져다줄지 알아보자.


‘가족관계등록법’은 호주제의 불변의 원칙이었던 부(父)성주의 원칙을 수정해 어머니의 성(姓)을 따를 있게 되었다는 점을 주요골자로 하고 있다. 또한 기존 일반입양제도의 한계를 보완한 ‘친양자입양제도’의 도입 등 다양한 가족의 형태를 수용하기 위한 내용이 포함된다.


<다섯 가지 색깔 띤 가족관계등록부>
‘가족관계등록법’이 시행됨에 따라 절차 및 관련 서류에 큰 변화가 생겼다. 과거 호주제 하에서 발급되던 등ㆍ초본은 ‘가족관계등록부’로 바뀐다. ‘가족관계등록부’에는 혼인, 입양, 가족관계 등 목적에 따라 가족관계증명서, 기본증명서, 혼인관계증명서, 입양관계증명서, 친양자 입양관계증명서 등 총 다섯 가지 증명서가 있다. 이 다섯 가지 증명서에는 공통적으로 본인의 등록기준지, 성명, 성별, 본, 출생연월일, 주민등록번호가 기재되며 각 증명서를 살펴보면, 서류에 담긴 내용이 기존의 호주제 때와는 상당히 다름을 알 수 있다.


#2008년 2월. 결혼을 앞둔 여성 A씨는 남편과 서로 이혼경력이 없음을 확인하기 위해 호적등본을 교환하기로 했다. 새해 첫 날부터는 등ㆍ초본이 사라졌다고 해서 이들은 새로 만들어진 가족관계등록부의 5가지 증명서 중 ‘가족관계증명서’를 발급받아 봤다. 각자 발급한 증명서를 교환한 그들은 상대방 증명서의 ‘배우자란’이 비어있는 것을 보고 안심했다. 그러나 서로의 이혼 여부를 알아보기 위한 A씨의 방법은 과연 맞을까?


정답은 ‘아니다’. 과거 호적 등ㆍ초본에는 조부모, 부모, 배우자, 형제자매의 인적사항 및 신분관계 변동사항이 모두 노출된 것과는 달리, ‘가족관계증명서’에는 부모, 자녀, 그리고 현재의 배우자, 이렇게 3대의 인적사항에 대해서만 기록하게 돼 있다. 따라서, 배우자의 이혼여부를 알아보기 위해서는 배우자 인적사항과 본인의 이혼사항이 기재된 ‘혼인관계증명서’를 확인해 봐야만 알 수 있다. 한편, ‘가족관계증명서’에는 3대만 표기되므로 형제자매는 나와있지 않다. 따라서, 이를 확인하려면 부모의 가족관계증명서를 확인해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다는 단점이 있다.


가족관계등록부의 가족관계증명서, 혼인관계증명서 외에 ‘기본증명서’에는 본인의 출생, 사망, 개명 등의 인적 사항에 대해 기록하고 있다. 또한, ‘입양관계증명서’에서는 양부모, 양자 인적사항, 입양ㆍ파양에 관한 사항을, ‘친양자입양관계 증명서’에서는 친생부모ㆍ양부모, 친양자의 인적사항 및 입양ㆍ파양에 관한 사항이 기재된다. 친양자입양관계 증명서는 ‘친양자 입양제도’가 새롭게 시행되면서 만들어진 서류이다.


<이름 첫 자리, 이제 고정석 아닌 ‘유동석’>
사례 1# 싱글맘, 이제 내 아이 내 성(性)으로
여자 탤런트 C씨는 지난 2월 자녀들의 성(性)을 본인의 성으로 변경하기 위해 가정법원에 ‘성(性) 변경 신청’을 했다. 이혼 후 싱글맘으로 살아가는 이들이 늘어나면서 C씨처럼 가정법원에 자녀의 성(姓) 변경을 요구하는 접수는 하루 평균 380건에 이른다.


이처럼 ‘가족관계등록법’은 자녀가 굳이 아버지의 성을 따르지 않고 어머니의 성을 따를 수 있도록 했다. 모계 쪽으로의 성(性)변경을 원할 경우, 부부가 혼인 신고할 때 자신들의 자녀가 모계 쪽의 성을 따르기로 협의한 사실을 함께 신고하면 향후 자녀 출생신고 시 어머니의 성과 본으로 가족관계등록부에 기록된다. 이러한 협의를 미리 하지 않았을 경우에는 법원의 ‘성(性)변경 재판’을 신청 후 재판을 통해 어머니의 성을 따르게 할 수 있다. 제한적이나마 자녀가 어머지 쪽 성을 따를 수 있게 됐다는 점에서 가족관계등록법은 호주제보다 조금 진보된 면이 있다. 그러나 어머니 쪽의 성을 따라도 결국 어머니의 부계 성을 따른 다는 점에서 부성주의 원칙이 근본적으로는 바뀌지 않았다는 한계가 있다.


사례 2# 재혼가정, 이제는 새아버지의 성으로
가족관계등록법이 시행된 이후인 1월 9일 광주지방법원 순천지원에서는 재혼한 여성 강모씨가 전 남편과의 사이에서 낳은 아들의 성을 현재 남편의 성인 김씨로 바꿔달라는 신청을 받아들였다. 강씨는 곧 초등학교에 입학할 아들이 전 남편의 성으로 인해 곤란한 일을 겪을 것이라는 생각 때문에 호적 제도가 바뀌자마자, 법원에 성변경을 신청했던 것이었다. 이 판결 이후로 전국적으로 자녀의 성과 본 변경을 신청하는 이들이 크게 늘어나고 있고, 1월 말까지 광주지법 순천지원에 제기된 자녀 성 변경 신청만도 40여 건에 달한다.


기존 호주제 하에서 재혼가정의 자녀들은 친아버지의 성을 유지할 수밖에 없어 주변으로부터 곱지 않은 시선을 받는 경우가 많았다. 재혼한 강씨가 했던 고민은 종전의 제도가 이혼 및 재혼가정이 크게 늘어나고 있는 우리나라의 변화를 수용할 수 없었다는 점을 보여준다. 그러나 ‘가족관계등록법’ 시행으로, 위의 사례와 같이 전 남편의 동의 없이도 법원에 신청함으로써 자녀의 성과 본을 바꿀 수 있게 됐다. 그렇지만 이 경우, 아이의 성이 새 아버지를 따르더라도 가족관계증명서상에는 친아버지의 이름이 남게 되고 새아버지와의 관계는 어디에도 표시되지 않는다. 대신 ‘친양자입양제도’를 통해 새아버지가 자녀를 친양자로 입양한다면, 법률상 완전한 친생자로 인정받을 수도 있다. 친양자입양제도는 자녀가 15세 미만일 경우에 해당되며, 입양된 자녀는 양부의 성과 본으로 변경되고 친생부모와의 법적관계는 소멸된다. 하지만 자녀를 친양자로 입양하기 위해서는 자녀의 친아버지의 동의가 반드시 필요하다. 때문에 전남편과 연락이 되지 않거나 전남편이 동의를 하지 않는 경우 자녀를 친양자로 입양하는데 어려움이 따른다는 한계가 있다.


또한, 재혼한 부모가 자녀의 성을 변경할 수 있게 됐다는 점에 대한 비판의 의견도 있다. 자녀의 성(性)이 부모의 재혼 또는 중혼으로 인해 임의로 계속 바뀌는 것은 자녀의 인권이 침해당하는 일이라는 것이다. 이와 같은 비판은 가족관계등록법이 우리 사회에 안착하는데 있어 더 보완되고 다듬어져야 할 필요가 있다는 점을 시사한다.

가족관계등록법 제도가 시행된지 석달이 흐른 지금, 기존 호주제에서의 문제점들이 보완돼가는 동시에 또다른 한계점들이 속속 드러나고 있어 이에 대한 개선책 마련이 절실하다. 또한 아직 구체적인 사항에 대한 홍보가 미진해이 시민들이 혼란을 겪기도 한다. 익명을 요구한 경기도 분당구청의 시민과 가족관계등록법팀의 직원은 “호적제도가 바뀌면서 생소한 용어로 인해 문의하는 글들이 홈페이지에 많이 올라온다.”고 말했다. ‘가족관계등록법’이 우리 사회에 긍정적으로 기능하기 위해 정책을 보완하려는 당국의 노력과 이 제도에 대한 우리 모두의 관심이 필요한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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