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월 26일 인문강좌에서는 이태진(서울대, 한국사학 전공) 교수가 ‘한국 고대-중세사와 외계충격 현상’이라는 주제로 세 번째 강좌를 진행했다. 이 교수는 당시 외계충격 현상을 증명해주는 고대, 중세 유적 사진을 청중에게 보여주며, 외계충격 현상과 당시 사람들의 인식 및 시대상을 설명했다.


그는 신라의 시조인 박혁거세 설화 속에서 외계충격 현상을 찾아볼 수 있다고 했다. ‘나정 곁 이상한 기운, 번개 빛 같이 땅에 비치더니 ---’라는 대목이 유성이 떨어지는 형상을 묘사한 문장이라는 것이다. 그는 “당시 사람들이 신화에 유성낙화장면을 묘사한 것으로 비추어 보아 유성을 신성시했었다는 사실을 짐작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또한, 고구려의 삼족오도 운석과 관련돼 있다고 말했다. 삼족오가 등장하는 설화는 어느 날 9개의 태양이 떠 있는 기이한 현상이 일어나 화살로 8개의 태양을 떨어뜨렸는데 그것이 삼족오였다고 말한다. 외계충격설에서 보면 이것이 운석, 그 중에서도 철광이 많이 들어있는 성분의 운석으로 볼 수 있다. 이 교수는 실제 철광 성분 운석 사진과 삼족오의 형상을 비교하며 비슷한 모양이 띄고 있는 것이 그 반증이라고 말했다.


설화뿐만 아니라 오회분, 무용총 등의 고분벽화에서도 외계충격현상을 찾아볼 수 있다. 이 교수는 삼족오가 그려진 오회분 벽화를 보여주며, “이 벽화처럼 대부분의 벽화에는 천장에 달과 태양이 그려져 있는데, 이것은 외계충격현상이 미화되어 나타난 정신세계의 산물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이러한 고분벽화는 중국의 벽화와 비슷한 부분이 많은데, 외계충격 현상으로 두 나라 벽화의 유사성을 설명할 수 있다고 말했다. 즉, 당시 외계 충격현상이 일어남에 따라 당시 중국인과 한국인은 흡사한 경험을 하게 되는데 이러한 경험에 따라 비슷한 인식을 갖게 될 수 있고, 비슷한 벽화가 나올 수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그는 “당시의 벽화가 중국 도교의 영향을 받을 수는 있지만, 근본적인 수입품이라는 인식을 갖지 말아야 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다음으로 이 교수는 ‘삼국사기’ 기록의 27.4%가 천재지변과 관련이 되어 있고, 이중 40%는 668년부터 880년 사이에 집중되어 있다며, 이 시기를 외계충격이 많이 발생한 시기로 분류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김부식이 천재지변에 주목한 이유를 짚어볼 필요가 있다며, 이에 대해 설명했다. 김부식이 살았던 시기에는 외계충격 현상으로 천재지변이 자주 발생했기 때문에 이에 대한 해결이 국정의 시급한 과제였다. 따라서 통일신라의 왕들이 많은 불교행사를 열어 재앙이 멈추기를 기원했다. 그러나, 김부식은 불교행사로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이 교수는 “유교적 방법을 지지했던 김부식은 진휼 사업이나 죄수 석방 등을 통한 유교적 관점에서 재앙을 해결해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설명하며, 유교적으로 재앙에 대한 생각을 성찰하는 것이 삼국사기의 중요한 목적 중 하나였을 것이라고 말했다.


또한, 신라 역사의 자랑거리인 석가탑 등의 건축 조형물도 재난이 그치길 바라는 신라인의 염원이 담긴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신라인들이 건축 조형물을 도솔천의 제석에게 보여줌으로써 자신들의 어려움과 바람을 알릴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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