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학교의 2009학년도 학사개편에 따르면 2009학년도부터 인문학부 사학 전공과 한국사학 전공은 역사문화학(혹은 역사학) 전공으로, 교육학 전공과 교육심리학 전공은 교육학 전공으로 통폐합된다. 이 같은 개편은 대학원 석사 과정까지 포함한다. 개편된 전공은 앞으로 입학할 09학번부터 적용된다. 지난 해 학부 및 대학원 여성학 과정 폐지(본지 1145호 참조)에 이어 다시 한 번 우리 학교에 전공 통ㆍ폐합 바람이 불어오고 있다. 숙대신보 취재부에서는 이번 학사개편에 대해 학교와 학우의 입장을 듣고 전공 통ㆍ폐합의 문제점을 짚어봤다.

일방적인 결정 전 충분한 대화 있었나

학우들은 학사개편 전 학교와 학우 간의 충분한 의견 수렴이 있었는지에 의문을 표하고 있다. 이번 학사개편에 대해 익명을 요구한 한국사학 전공 학우는 “학우들의 의사는 전혀 듣지 않고 학교에서 일방적인 결정을 한 점이 부당하다”고 말했다. 학교 측에서는 ‘지금껏 학칙 개정이 이뤄지기 두 주 전 학교 홈페이지 게시판에 학사개편안을 공지해 학내 구성원의 의견을 수렴해 왔으며, 이번에도 역시 같은 절차에 따를 예정이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김수빈(교육 07) 학우는 “공지사항이 올라가는지조차 모르는 학우가 대다수인데, 학교에서 형식적으로 올린 공지사항을 통해 학우들의 의견을 얼마나 반영할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학사 개편과 관련해 신입생들은 학교로부터 어떠한 종류의 공지 사항도 듣지 못한 상태에서 입학했다. 입학한 후 자신이 선택한 전공이 다음 해 없어진다는 사실을 알게 된 신입생들은 이번 통ㆍ폐합 결정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입학 후 선배들로부터 학과 통ㆍ폐합 사실을 처음 전해 들었다는 안소담(인문 08) 학우는 “처음부터 한국사학 전공을 염두에 두고 우리 학교를 선택했는데 전공이 없어진다는 것을 받아들이기 어렵다.”며 이번 개편에 대해 반대 입장을 밝혔다. 익명을 요구한 교육심리학 전공 학우는 “학교 측에서는 당장 큰 변화가 없고 졸업에도 불이익이 없다고는 말하지만 내가 선택한 전공이 없어지니까 감정적으로 좋지 않다”며 “졸업한 이후 더 이상 후배가 없다는 사실도 마음이 아프다.”고 말했다.

전공 통ㆍ폐합만이 능사가 아니다

이번 학사 개편에 대해 해당 학과 교수들은 이미 모두 협의를 마친 상태이다. 강혜경(한국사학 전공) 조교수는 “서양사와 한국사를 통합하고 여기에 문화를 더해 ‘역사문화학’이라는 새로운 학문이 태어나는 것이지 한국사학과 사학이 없어지는 것은 아니”라며 “사회적 수요에 걸맞도록 앞으로의 교육과정을 문화 중심으로 구성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구체적인 교육과정도 갖춰져 있지 않은 상태에서 갑작스럽게 통보된 통ㆍ폐합 소식은 학우들의 혼란을 가중시키고 있다.
외부 학계 전문가들은 이러한 전공 통ㆍ폐합으로 긍정적인 효과만 기대하기는 힘들다고 말한다. 서울여대 김소희(교육심리학 전공) 강사는 “교육심리학이 교육학과 통합되면서 시너지 효과를 낼 것이라는 주장은 타당해 보일 수 있지만 그렇지 않다.”며 “교육심리학에서 논의됐던 깊고 세분화된 주제가 어쩔 수 없이 제약받게 될 것이다.”라고 말했다. 충남대 송양섭(국사학 전공) 교수는 “사학과 한국사학 전공을 통합함으로써 학문적 연계성을 높이겠다는 의식을 갖고 결정한 것이라면 환영이지만, 순수한 학문적 의도가 아니라면 문제가 있다.”며 “최근 숙대가 실용주의 노선으로 가고 있다는 기사가 종종 보도되는데 대학은 기초학문을 지키고 교육할 의무가 있다.”고 말했다. 송 교수는 “기업 논리를 내세워 학내 인문학 ‘구조조정’에 나선 것이라면 기초학문의 위기는 보다 현실화될 것”이라고 말했다. 사학 전공 졸업생 모임 ‘청사회’의 박경자(사학 71졸) 동문 역시 한국사학과 사학 전공 통ㆍ폐합에 관해 “학교에서 인문학을 소외시키고 실용 학문 중심으로 가려는 것 같다.”는 우려를 나타냈다.

흔히 ‘대학은 영리를 추구하는 기업이 아니’라고 한다. 그러나 사회적 수요에 맞지 않고 전공 선택자가 적다는 이유로 세분화해 연구해야 할 기초 학문들은 하나 둘 학교에서 자취를 감추고 있다. 효율적인 경영 마인드와 사회적 수급에 급급해 학문을 학문으로, 교육을 교육으로 대하지 않는 대학의 현 주소. 한때 ‘진리의 상아탑’이라고 일컬어지던 대학 교육은 지금 통ㆍ폐합의 길을 걷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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