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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와 꽃어렸을 적 엄마는 나무였다단단한 그 나무는 말이 없었다비가 내리면 우산이 되어주고볕이 쬘 때면 그늘을 만들어주었다스스로 제가지 꺾어내어 열매도 내어주었다그러나 마디 길어진 손으로 눈을 부비고 다시 보니엄마는 그 때의 나무가 아니었다나무 옆 작고 연약한 등꽃이었다엄마 몸을 줄기 꽃대처럼 가느다라졌다엄마 손, 이파리는 작아져만 갔다이제 그 꽃을 바라보
숙명여고문학상
숙대신보
2010.09.01 1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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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시아 필 무렵홀로 짓는 꿈의 무늬가 이러할까길 없는 허공에 길을 엮어두고아카시아나무 우듬지에거미는 일정한 간격으로 하루를 짠다바람은 걷는 대로 길이 된다벚나무가 봄의 지문들을 흩날리고거미줄에 걸린 끼니처럼붉은 햇살이 알알이 엉겨붙어 옴짝달싹 못한다거미는정오의 태양을 야금야금 갉아먹는다꽃봉우리 맺힌아카시아를 잇는 풍경을그려내는 거미,아카시아 꽃이 피면거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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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대신보
2010.09.01 1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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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시아 필 무렵아카시아 필 무렵에 윗 잇몸이 가려워 왔다동구마다 걸린 푸른 잎맥 틈에꽃물을 따 먹고 건너가던 봄날,붉은 잔가지 같은 잇몸으로뽀얀 덧니 하나 솟았다아카시아 흰 꽃잎을 닮은 덧니는여린 나뭇가지 위로 삐툴게 걸려들었다소리 없이 벌어진 이 꽃잎은준비 되지 못한 잎새 틈을하얗게 덧대어 가는 것인지,단단하게 차오르는 아카시아에부풀어 오른 젓망울이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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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대신보
2010.09.01 1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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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사람은 우연이었다고 말했다. 우연, 참 편리한 단어라고 생각했다. 한 시 십오 분, 남자가 철문을 밀며 골목으로 나온다. 헤진 남방 아래에 헐렁한 추리닝을 입은 남자. 남자는 검게 세팅 된 나의 유리창으로 흘끗 시선을 던지지만 그냥 지나친다. 방금 나와 눈이 마주쳤단 사실을 모르는 것 같다. 백미러로 남자가 완전히 골목에서 사라지는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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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대신보
2010.08.31 1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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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지는 것독한 냄새가 코를 욱신 찔렀다. 반 쯤 열어둔 차창으로 쇠똥을 섞은 거름 냄새가 들어왔다. 모서리가 닳아버린 돌을 타고 흐르는 도랑이 양 옆으로 보였다. 마을 입구를 알리는 개구리 모양 돌비석도 나타났다. 아침 일찍부터 부산을 떤 덕분에 해가 떨어지기 전 시골에 도착했다. 대문마저 없는 시골집 마당으로 짐을 끌며 들어가고 있는데 ‘왔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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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대신보
2010.08.31 1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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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지는 것“에휴…….”어머니의 깊은 한숨 소리.어린 나는 쭈뼛거리며 눈치를 살핀다. 전화벨이 울려주었으면, 속으로 간절히 빈다. 하나님, 예수님, 부처님, 공자님, 알라신……. 알고 있는 모든 신들을 떠올리며 기도를 하느라 나의 머릿속은 안쓰럽게도 포화 상태가 되고 만다.그러나 그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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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대신보
2010.08.31 1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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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화상네팔의 하늘은 티 없이 맑은 코발트색이었다. 매연과 먼지로 오염된 서울에서는 볼 수 없는 하늘이었다. 이 하늘을 본 것만으로도 여행 온 보람이 있었다. 상희야, 나랑 같이 네팔에 가자. 거기 하늘이 빠져 죽고 싶을 만큼 아름답대. 네팔 가이드북을 덮으며 이모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뜬금없이 네팔은 무슨……. 내가 말끝을 흐리자
숙명여고문학상
숙대신보
2010.08.31 1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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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숙명 여고문학상 수필 부문에는 총 116명이 참가하여 저마다의 문학적 감수성을 빛내주었다. ‘자화상’, ‘사라지는 것’ 등, 두 개의 글제로 진행된 이번 수필 부문 백일장 작품들은 오늘날의 여고생들의 생각과 고민의 현 주소를 잘 드러내는 장이기도 했다. 모든 글들이 글쓴이의 내면을 드러내는 일이겠지만, 특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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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대신보
2010.08.31 1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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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6회 숙명 여고문학상 콩트 부문에는 모두 70여명이 참여했다. ‘우연’, ‘뼈아픈 후회’의 두 가지 글제로 진행된 콩트 부문 심사를 맡은 두 사람의 심사위원은 숙고 끝에 올해에는 1등을 뽑지 않기로 최종 결정했다. 그래서 올해 숙명 여고문학상 콩트 부문에는 2등, 3등 각기 한 편의 작품과 장려상 네 편의 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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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대신보
2010.08.31 1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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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 열심히 쓴 흔적이 역력하지만, 노상 마주치는 문제점이 여전히 눈에 띄었다. 첫째, 사건이 비슷하며 그럴듯하지 않았다. 죽음, 이혼, 실직, 가족 간의 갈등 등을 다룬 작품이 많았는데, 아주 흔할 뿐 아니라 실은 매우 충격적인 사건이어서, 감동을 일으키기 어렵고 인과성 있게 전개시키기도 어렵다. 둘째, 내면성이 부족하였다. 인물들의 성격이나 행위 동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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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대신보
2010.08.31 1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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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시각과 나의 목소리 숙명 여고문학상 백일장이 16회를 맞았다.매년 미지의 여고생들이 새로 쓰는 작품을 만나는 두려움과 즐거움은 각별하다. 이는 가히 무에서 유를 찾아내는 발견의 기쁨과 그 숙연함이라 할 만하다. 상상력의 신비와 창작의 아름다움을 거듭 절감하게 되는 것이다.1등으로 결정한 <아카시아 필 무렵>은 ‘아카시아 필 무렵에
숙명여고문학상
숙대신보
2010.08.31 1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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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탈길그는 자신의 몸을 뒤로 뉘여 본다. 뒤에 아무도 없지? 새삼스레 뒤를 돌아본 뒤 그는 버튼을 누르고 몸을 완전히 뒤로 젖힌다. 달리는 고속버스 안. 창문 유리로 빗방울의 몸이 파열되어 흐른다. 창밖의 건물들이 내 몸으로부터 수직으로 서 있다. 이 정도 경사가 아니었나? 그는 어느 비탈길을 생각하며 자신의 몸의 경사를 조절해 본다.그는 어느 시골 마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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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대신보
2010.08.31 1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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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내린 비어젯밤에 비가 내렸다. 아파트 복도에 서서 주위를 둘러보았다. 온통 축축하게 젖어 있었다. 오늘도 비가 오려나. 코로 숨을 들이마셨다. 바람에서 비 냄새를 맡았다. 아파트 현관으로 내려갔다. 우편함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경비실에 딸린 화장실에선 쪼르르 물소리가 났다. 길에 고인 물웅덩이에 목련 꽃잎 두어 장이 동동 떠있었다. 가장자리부터 까맣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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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대신보
2010.08.31 1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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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내린 비마디 굵게 내리던 고드름이 비를 맞고는 뚝뚝 울고 있다. 어제는 하루 종일 투덕투덕 비가 내렸다. 할아버지는 댓돌에 걸터앉아 미처 들여놓지 못했던 고무슬리퍼를 내려다본다. 코가 막힌 앞쪽으로 빗물이 흘러 들어가 새치름하게 고여 있다. 할아버지는 슬리퍼를 집어 물이 빠지도록 벽에 기대어 세워놓는다. 덕에 날은 맑어서 좋네, 잘 왔다 갔어 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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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대신보
2010.08.31 1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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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픔과 성찰의 진정성을 보며‘사과’와 ‘낯선 가방’이 글감으로 주어진 수필 부문에는 모두 140여 편의 응모작이 모였다. 짧은 시간에, 주어진 글감으로 글 쓰느라 수고한 응모자들에게 우선 박수를 보낸다. 응모작들의 수준은 대체로 엇비슷했다. 간혹 내면의 아픔과 상처를 곡진하게 보여 주어 마음을 울리는 작품들이 보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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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대신보
2010.08.31 17: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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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 건네는 사과아침 7시 15분. 나는 물기가 남아있는 머리카락을 휘날리며 선릉행 지하철을 탄다. 자리가 없다는 사실에 조금의 한숨을 내쉬고 생각에 잠긴다. ‘그래, 오늘도 힘내자.’ 멀뚱멀뚱 서있는 학생들을 보며 ‘난 다르다’는 생각으로 신문 사설을 읽는다. 두 개를 읽자 지하철은 이대역에 도착하고 나는 수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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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대신보
2010.08.31 1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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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선 가방화창한 일요일 아침 엄마와 나는 울퉁불퉁한 아스팔트 위로 덜덜 소리를 내며 케리어를 끌고 집을 나섰다. 엄마와 나는 여행 다니는 것을 무척이나 좋아한다. 여행은 항상 새로운 도전이고 신선한 충격이다. 세계 속에 있는 새롭고 아름다운 곳들을 다녀온 이후 최소한 일주일 동안은 일상으로 돌아오기 어렵다는 휴우증이 있긴 해도 그건 여행을 사랑하는 사람이라
숙명여고문학상
숙대신보
2010.08.31 1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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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eyond the World.” 야간자율학습, 통칭 야자를 마치고 집으로 향하는 길이었다. 어느 정류장에서 버스에 올라탄 중년의 아저씨가 내 눈길을 끌었다. 이상한 경험이었다. 그때 마침 귀에 꽃혀있던 이어폰에서 흘려 나온 노래 가사는 “~아버지를 이해할 때 넌 어른이 돼.”라는 부분이었다. 늘 즐겨듣는 노래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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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대신보
2010.08.31 1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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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의 연금술사를 향한 길 닦기전국 여고의 문학도들이 백일장에 참여하여 지은 120여 편의 시 작품들 중 1차 예심을 거쳐 20편의 작품이 본선에 올라왔다. 주어진 시제로 정해진 시간 안에 완성도 높은 작품을 내놓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올해는 일정 수준 이상의 시적 기량을 보여주는 작품들이 많이 눈에 띄어 심사위원들은 즐거운 마음으로 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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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대신보
2010.08.31 1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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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집안방에서 들려오는 재봉틀소리온몸으로 달달거리며 울고있다엄마 손 사이로 조각난 밤이 꿰매지고그 위로 아빠의 별똥별이 떨어졌다실을 풀으며자신도 다 풀려가고 있었다는걸 엄마는 알았을까손에 수많은 박음질수십번 터진 손, 저 혼자 밤새 매꾸었다내 옷에 별을 달기위해침침한 눈으로 매일 밤마다 별을 찾던 엄마페달을 밟으며 밤하늘을 돌아다녔다가끔은 아빠가 하늘에 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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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대신보
2010.08.31 17: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