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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숙명의 교정과 함께한 지도 4년 째에 접어듭니다. 캠퍼스에 처음 발을 내디딜 때 느꼈던 설레는 감정은 시간이 지날수록 숙명에 대한 애교심으로 가슴 깊이 자리잡아 갑니다. 새내기였던 저는 어느새 선배가 됐고, 후배들을 새로이 맞아 우리 숙명의 아름다움과 자랑스러움에 대해 전하고 있는 제 자신을 발견합니다. 이러한 숙명이 창학 104년을 맞이했습니다. 시
창학특집호
숙대신보
2010.05.24 2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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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렌드’라는 말은 영어지만 이제 흔히 쓰는 단어가 됐다. 세상이 워낙 빨리 바뀌다 보니 트렌드를 제대로 짚지 못 하면 적응이 힘들어진다. 모임이건 상품이건 사람이건, 끌리는 데는 다 이유가 있게 마련이다. 매력이 있어야 사람들이 모여든다. 매년 언론사나 경제연구소가 선정하는 ‘히트 상품’을 보면 트렌드를 알 수
창학특집호
숙대신보
2009.06.20 2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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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명여자대학교의 개교 102주년을 진심으로 축하합니다. 2007년, 경남 진해에 있는 해군사관학교는 여성사학의 최고 명문인 숙명여대와 학술교류 협정을 체결한 바 있습니다. 이를 계기로 양교는 함께 발전하고 성장하는 매우 뜻 깊은 기회가 될 것으로 확신하면서, 해사인 모두를 대표해서 숙명여대가 우리나라를 이끌어 나가는 훌륭한 여성 리더의 산실이 되기를 기원합
창학특집호
숙대신보
2008.05.21 1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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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업의 벽이 높아짐에 따라 대학생들의 마음의 짐은 커져만 간다. 자신의 진로가 고민되는 숙명인이나 취업난의 최전선에 서있는 숙명인이라면, 다음 각 단과 대학별 사회 진출 현황을 참고해보자. 문과대학 동문들의 대부분은 전국 대학교 및 중·고등학교의 교수와 교원으로 자리매김을 하고 있으며 방송인, 광고 카피라이터, 신문 및 잡지 기자, 출판 기획자
창학특집호
숙대신보
2008.05.21 15: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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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새 벚꽃이 지고 녹음이 무성해졌다. 교정의 모습을 보면 ‘예전에도 이렇게 녹음이 무성했을까’하는 생각이 든다. 30여 년 전 교정을 거닐었을 권순인(물리 76졸), 김정란(의류 80졸), 이성림(국어국문 78졸) 동문에게 우리 학교 과거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우선, 예전 우리 학교 캠퍼스의 모습에 대해 들어볼 수 있었다. 김정란 동
창학특집호
숙대신보
2008.05.19 16: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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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주년 기념행사를 한 것이 어제 같은데 벌써 2년이 지났다고 하니 믿어지지가 않습니다. 22일은 청파언덕에 숙명의 역사가 시작된 뜻 깊은 날입니다. 변함없이 자연은 올해에도 경이로운 생명의 힘으로 5월 숙명의 교정을 푸르게 밝혀주고 있습니다. 수채화처럼 아련한 순헌관 앞 작은 연못은 예전이나 지금이나 변함없고, 이제 르네상스 플라자와 백주년기념관 등은
창학특집호
숙대신보
2008.05.19 1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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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수님들과 숙명의 변천사를 돌아보다 우리 학교의 변천사를 가장 가까이에서 지켜봐 온 박영혜(불어불문학 전공), 임명애(성악 전공), 김갑년(의사소통센터) 교수를 만나 우리 학교의 과거에 대해 들어봤다. 우리 학교에 30년 이상 재직하고 있는 박영혜 교수가 처음 우리 학교에 왔을 때, 본관은 현재의 모습처럼 석조 건물이 아니라 목조 건물이었다. 박 교수는 &
창학특집호
숙대신보
2008.05.18 22: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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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업 고민, 학년별로 이모저모 기자: 이번 좌담회에는 당장 취업을 눈앞에 둔 04학번과 비교적 취업준비에 여유가 있는 06학번, 07학번의 학우들이 모였다. 각 학년 별로 취업에 대해 느끼는 점이 다를 것 같다. 정유정(이하 정) : 4학년이 되니까 3학년과는 확실히 다르다. 졸업을 하려면 메이트와 논문 준비도해야 하고 취업준비도 따로 해야 하기 때문에
창학특집호
김혜미 기자
2008.05.17 0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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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명’이라는 이름으로 365일 함께 하는 숙명인들. 같은 것을 보고 같은 경험을 하기에 서로를 더욱더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숙명인이라면 누구나 고개를 끄덕일 수 있는 소재 중 몇 가지를 선정해 네 글자로 표현해 봤다. 언덕을 넘어가면, 아담교정 우리 학교 정문 앞에 서면, 명신관까지 이어지는 언덕 때문에 한숨부터 나온다. 이에 못
창학특집호
숙대신보
2008.05.17 0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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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6년 설립된 우리 학교는 황실의 보조금을 받으며 운영됐다. 그리고 이후 경선궁과 영친왕궁으로부터 하사받은 농경지를 기본재산으로 재단 법인을 설립했다. 1930년대에 이르러서는 지성인들이 보다 높은 여성 교육의 필요성을 깨우치며 민족 여성교육기관을 세우려 시도했다. 이것은 '숙명여전 설립 모금 운동'으로 이어졌고 1938년 숙명여자전문학교로 새롭게
창학특집호
이소라 기자
2007.05.21 15: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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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에 부가된 벌금이 7억 8,000만 원에 달한 때가 있었다. 우리 학교는 황실로부터 황해도 재령군ㆍ신천군ㆍ은율군ㆍ안악군과 경기도 파주군, 전라남도 완도군 등에 있는 약 300만 평의 농경지를 재원으로 하사 받았다. 그리고 이왕직 장관으로부터 학교 부지 6,471평에 대해 무상임대 승낙을 받기도 했다. 그러나 1957년 캠퍼스를 이전하기 위해 응암동에 준
창학특집호
이소라 기자
2007.05.21 1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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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 어디서나’ 유비쿼터스 캠퍼스 우리 학교는 1999년 3월 국내 대학 최초로 무선랜 서비스를 시작해 유비쿼터스 대학으로서 기반을 다졌다. 2005년부터는 ERP(전자적 자원관리 시스템)를 본격적으로 가동했다. 이 시스템을 통해 전자결재, 구매ㆍ회계 통합 등이 가능해져 업무를 보다 신속하고 체계적으로 관리할 수 있게 됐다.2006
창학특집호
최윤영 기자
2007.05.19 1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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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숙명인의 주된 배움터인 순헌관과 명신관의 본래 명칭은 본관과 서관이었다. 2005년에 바뀐 이 이름들은 어떤 의미를 갖고 있을까? A: 순헌관의 ‘순헌(純獻)’은 고종황제의 계비인 황귀비(皇貴妃)의 시호이다. 순헌 황귀비는 19세기 말 외세에 의해 기울어진 국운을 회복시키기 위한 신교육의 필요성을 실감했다. 때문에 ‘명
창학특집호
김혜미 기자
2007.05.19 08:25